벼농사의 시작은 못자리를 만들면서부터 시작된다. 겨우내 얼었던 논이 해토머리가 되면서 논에는 트랙터가 분주하다. 볍씨가 싹을 틔우면 모판에 흙을 채운 뒤 씨를 뿌리고 다시 흙을 덮어 논의 한 쪽 귀퉁이에 못자리를 만드는 게 큰 일거리다. 십여 년 전부터는 파종기가 있어 편해졌다지만 그래도 이때가 가장 손이 많이 필요하다. 소농은 모판이 몇 개 안 되니 일일이 손으로 심을 수 있다. 작은 필지는 110개 정도, 큰 논은 150 개 정도이니 하루 종일 컨베이어를 돌리면 20여 필지의 논을 끝낼 수 있다.
재작년에는 수매가가 포대 당 만 원 씩 떨어졌지만 풍년이 들어 논 한 필지 당 미곡처리장(PPC) 백으로 하나 씩 더 나와 즐거웠다. 농부에게는 자식 키우는 것 같은 농사이기에 풍년이 드는 게 훨씬 기분이 좋다. 주머니의 돈 액수야 예전의 수입과 별 차이가 없어도 말이다. 작년에는 평균보다 한 백 씩 줄어들었지만 수매가가 보전되지 않았다. 그래 그때서야 재작년의 수입이 준 것을 실감했다. 수고로운 농사를 한 셈이었다.
지금은 농사도 과학이어서 한 필지에 정확하게 수입이 계산되는 세상이다. 절대 농지인 호남평야의 한 가운데서 농사를 지어 횡재를 한다는 것은 바랄 수 없다. 부지런히 일하는 것만이 보너스라는 생각이다. 올해는 모든 물가가 올랐는데 농자재 값도 안 오른 것이 없다. 그러니 저절로 한숨이 나올 뿐이다. 하지만 날마다 자라나는 어린애 같은 벼들이 있기에 일하는 것을 행복으로 안다.
철이 든다는 것은 농사의 때를 안다는 것이다. 벼를 심고 물을 줄 때와 비료를 뿌릴 때를 안다는 것이다. 어느 것이고 그럴 테지만 벼는 주인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큰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정성과 간절한 마음으로 키운다. 그래서인지 못자리를 하는 날은 조촐한 잔치가 벌어진다. 주인의 기분을 동네 사람들에게 전하려는 것이리라. 오늘은 옆집 김 씨가 유난히 분주했던 날이다.
갑자기 뒷집의 이 씨가 전화를 하면서 언성을 높인다. 가만히 들어보니 콩 농사를 지으려고 종자를 주문했는데 택배비를 저쪽에서 2만5천 원 달라고 하는가 보다. 이 씨는 밭 한 필지에 50kg의 콩 농사를 계획하고 있었다. 이 씨가 언성을 높이는 것은 택배비가 터무니  없어서가 아니고 올해는 콩을 심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가 답답해서이리라. 밭에나 심는 콩인데 논을 손봐서 다시 심어야 하는 번거로운 과정 때문에 화를 내고 있는 것이리라.
필리핀은 지난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쌀 수출국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수입국이 되었다. 사시사철 한쪽에서는 모내기를 하고 그 옆에서는 수확을 한다지만 쌀이 부족해 폭동이 일어날 지경이다. 수 년 전 필리핀 관광을 했을 때이다. 자동차로 30분을 달려도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넓은 들에 풀만 무성히 우거졌던 것을 나는 본 적이 있다.
어떤 이는 비교할 나라가 없어서 필리핀을 언급하느냐고 하겠지만 한국의 사정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다. 필리핀의 현장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미래는 확실히 달라질 것이다. 우리 한반도 농토의 못자리가 더 이상 줄지 않기를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