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에게 배우는 지혜」

 
옛날 농경사회에서는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갖춘 노인의 역할이 컸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정보산업의 발달로 노인의 존재가치가 떨어져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특히 국가발전과 자식교육을 위한 노인들의 희생정신에 합당한 존경과 보답을 받아야 함에도 핵가족화로 인해 심각한 소외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리스 속담처럼 ‘집에 노인이 없으면 빌려오라’는 말이 아쉬운 때다.
 
고려시대 노모의 지혜로 고려장이 폐지된 기로설화(耆老說話)가 있다. 한 청년이 늙은 어머니를 버리려고 지게에 지고 가는데, 머리위에서 뚝뚝 나뭇가지 꺾는 소리가 들려 어머니께 물으니 ‘네가 돌아 갈 때 길을 잃지 말라고 표시 해 두는 것’이란 말을 듣고 청년은 콧등이 시큰하여 눈물이 앞을 가로 막았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해가 지기를 기다려 다시 집으로 돌아와 골방에 숨기고 아무도 모르게 봉양하였다.
 
어느 날, 중국에서 사신이 왔는데 세가지 수수께끼 문제를 기한까지 풀지 못하면 군사를 몰고 오겠다고 위협했다. 첫째 문제는, 아홉 굴곡이 있는 구슬에 실을 꿰는 일이고, 둘째는, 호리병 안쪽에 병을 깨지 않고 종이를 빈틈없이 바르는 일이고 셋째는,나무를 태운재(灰)로새끼를 꼬라는 어려운 문제였다. 다급한 조정에서는 이 문제를 푸는 사람에게 후한 상을 내려 주겠다는 방을 써 붙였다. 청년은 밥상머리에서 어머니에게 수수께끼 얘기를 했다. 어머니는 그게 무슨 어려운 문제냐며 다음과 같은 답을 일러주었다.

첫째문제는 개미허리에 실을 맨 다음 다른 한쪽에서 맛있는 음식냄새를 풍기면 개미가 그 냄새를 맡으면서 찾아 들어가면 실이 저절로 꿰어질 것이고, 둘째는 종이를 뜨기 위해 마련한 닥나무 물을 병에 담갔다 쏟기를 여러번 되풀이 한 다음에 병을 말리면 저절로 종이가 빈틈없이 발라질 것이며, 셋째는 짚으로 꼰 새끼줄을 소금물에 담갔다가 말려서 불에 태우면 새끼모양이 그대로 남아 있게 되므로 재로 꼰 새끼가 된다고 쉽게 풀어 주었다. 청년은 곧장 조정으로 달려가 어머니가 일러 준 지혜를 말했다. 조정에서는 청년에게 큰상을 내리고, 그 후론 나이 많은 노인을 버리는 악법을 폐지했다는 얘기다.
 공자에게 번지(樊祗)라는 제자가 있었다. ‘스승님, 어떻게 하면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는지 오곡 가꾸기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물었다. 공자는 ‘나는 늙은 농부보다 모른다.’고 답했다. 공자자신은 농사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으니, 동네에서 제일 잘 짓는 노인에게 배우라고 충고한다. 버릴 것 없는 노인의 말씀을 ‘잘 새겨듣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교훈이다.
 
80세 노인이 병원에서 종합검진을 받았다. 의사는 ‘무병 건강하다’는 결과를 말하고, 노인에게 무병건강의 비결을 물었다. ‘결혼초기에 부부간에 약속한 얘기가 있습니다. 부부생활 중에 화나는 일이 있을 때, 평안을 위해 아내는 부엌으로 피하고, 저는 외출하여 산책으로 피했지요. 지금까지 어김없이 서로 배려하고 사랑하며 실천했습니다.’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어느 화가의 노인 예찬이다. ‘나는 아이의 얼굴보다 노인의 얼굴을 그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 아이의 얼굴은 해맑고 천진하지만 막상 그리려 하면 그릴 것이 없다. 반면에 노인의 얼굴에는 인생을 살아온 풍부한 표정과 주름이 있으며, 이로 인해 그림이 풍성해진다.’고 했다. 노인의 얼굴에 담긴 표정과 주름에는 각종 이야기와 사연이 담겨져 있다. 노인은 얼굴에 새겨진 주름만큼 많은 체험과 지혜를 소유하고 있다. 청년의 매끈한 얼굴도 아름답지만, 노인의 주름진 얼굴이 더 아름답다. 노인은 지금 약하지만 한때 강하게 생존했고, 젊은이는 지금 강하여 번성하지만 반드시 또한 늙게 된다. 젊은이들은 용기와 패기, 진취적 기상이 풍부하다. 그러나 삶의 지혜는 부족하다.
 
우리는 노인의 지혜를 존중하고 귀담아 들을 때, 더욱 풍성한 행복사회로 다가설 수 있다. 노인과 젊은이가 함께 공존하면서 지혜를 배우고 공경하는 전통사회로 이어가기를 기원해 본다.

 김     재     춘
                                                         (전.완주동양초등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