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편에 이어>시간이 흘러서 그런지, 아니면 내 기억이 잘못된 건지. 봉래루를 천천히 돌면서 내 머리 높이 만큼에 있었던 그날의 기억을 찾는 데는 그 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고 나만 아는 그 만다라를 다시 찾았을 때 느낀 야릇한 희열감이란, 한 뼘도 채 안 되는 크기에 중요한 부분도 아니고 건물 귀퉁이에 무심한 듯 자리를 잡은 꽃문양과 부처님의 눈. 나무의 결에 시간이 더하여져 마치 살은 풍장 되고 뼈만 압축한 듯한 저 작은 경전 아니 만다라. 나는 홀로 신기함에 빠져들었고 한참 후 마음을 다듬어 다시 한 번 사진을 찍어 그 문양을 마음 깊이 저장해 두었다. 그리고 언제 보아도 위엄과 기품을 갖춘 대웅보전 기둥과 아름다운 문살무늬, 기와지붕이 가진 수려한 라인은 우리 사찰의 건축미를 유감없이 보여준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봉래루를 통과하면 정면에 대웅보전이 있고, 왼편으로는 무설당 오른편으론 설선당이 마주 보고 있는데 이 간결하고 단아한 건물 또한 언제봐도 아름답다는 감탄사를 첨언 하지 않을 수 없다.

대웅보전 벽과 천장을 장식한 불화는 불화대로 조금만 공부하고 보면 넋을 놓고 보기게 충분하다. 현대인의 일상이 모던함과 최첨단 문명에 길들어 있다면 오래된 사찰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상기시키고 시간의 결을 되살려주는 동시에 속도에 편승하지 않고 순하게 흘러가도록 원래의 시간을 회복시켜 준다고 할까. 하여, 많은 사람들이 종교관과 상관없이 사찰을 찾는 이유는 대개의 사찰이 깊은 산자락 울창한 산림에 둘러싸여 있어 그 자체로 자연적인 도량이 되기도 하거니와 나무의 수령이 곧 사찰(암자 포함)의 역사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 발품을 팔더라도 입을 닫고 귀는 열고 자신의 두 발로 걸어 그 호젓한 길로 들고나는 과정이야말로 시공을 초월한 힐링의 한 방법이고 대 자연 속에서 나를 풀어 채우는 나만의 여행이 아닐까싶다. 인공적인 빛과 소음과 속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고즈넉한 사찰기행이 필요한 이유겠다.

곽보경 / 칼럼니스트 겸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