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화가 최북

최북(崔北)은 주목할 가치가 충분한 사람이다. 그는 18세기를 살다간 화가이다. 그는 1712년에 태어난 것으로 돼 있으나 사망연도가 불분명하다. 혹자는 그의 사망연도를 1786년으로 잡고 있으나 그것은 짐작일 뿐이다. 아직 확증할만한 문건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정말로 그해에 사망했다면 1786년은 이중으로 의미가 있는 해가 될 것이다. 바로 그해에 추사 김정희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대개 유명한 사람들은 생몰연도가 분명하다. 유명하면 유명할수록 태어난 날과 시며 사망한 날과 시가 뚜렷하다. 그렇다고 해서 최북이 유명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의 사망 연도가 불분명한 것은 그의 마지막이 너무 기구했기 때문이다. 그는 폭설이 내리던 날 객사했다. 그것도 분명한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고 그의 죽음을 애석해 한 동시대의 인물인 신광하(申光河) 시인의 시에서 사정을 짐작할 있을 뿐이다.
그의 자는 많이 있으나 그의 이름을 파자한 칠칠(七七)이 가장 유명하다. 북을 파자한다고 해서 그게 온전히 칠칠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그의 글자 해석은 독특했다. 호 또한 많이 있으나 곧바로 떠오르는 것은 호생관(毫生館)이다. 그의 자나 호를 보아서 짐작할 수 있는 대로 그는 괴짜였다. 그리고 자존심이 아주 대단했다. 그의 호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그대로 그는 붓으로 벌어 먹고자했다. 이를테면 그는 당대의 전업 화가였던 셈이다.
그의 기구한 삶만큼이나 그는 기이한 일화를 많이 남기고 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일화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그를 기리는 것은 아니다. 그의 그림이 그만큼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 중에서는 <공산무인도(空山無人圖)>가 가장 개성적이다. 그림의 오른 쪽 상단에 공산무인수류화개(空山無人水流花開)라는 글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계절적으로 요즘과 같은 때가 아니었나싶은데 그림을 보면 화가가 순식간에 그려냈음을 알 수가 있다. 더듬거리는 기색이 없이 그리고 싶은 대로 붓질이 자유롭고 단순하다. 그의 또 하나 유명한 그림 중에는 <풍설야귀인(風雪夜歸人)>이라는 그림이 있다. 나는 붓질이 이처럼 힘차고 거친 그림을 다른 화가에게서도 본 적이 없다. 하늘을 베어낼 듯 칼바람이 불고 있는데 헐벗은 나무들은 몸부림치며 울고 있다. 그런데도 그림속의 선비는 시동을 데리고서 의연한 자세로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눈 밝은 이라면 그의 두 그림에서 시대를 앞서 간 거장의 혼을 발견할 수가 있으리라. 그만큼 그의 그림은 서양의 인상파 화가보다도 야수파 화가보다도 선구적이다.
혹자는 그에 대한 일화만을 읽고서 그가 광인이었을 거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이라면 그의 그림 <표훈사도(表訓寺圖)>를 보아야 한다. 표훈사도에 나타난 섬세한 묘사는 그가 정갈한 심성의 소유자임을 우리에게 일깨우고 있다. 나는 그의 표훈사도가 중ㆍ고등학교의 학생들에게 친숙하고도 모범적인 그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오늘 내가 독자와 함께 최북에 대해서 이야기한 이유가 있다. 어제가 장애인의 날이었고 최북이 장애인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한쪽 눈이 없는 애꾸였다. 그가 애꾸눈이가 된 사연이 전하고 있지만 나는 그 이야기의 진실성을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마음이 없다. 다만 궁금한 것이 있는데 국내의 모든 장애인들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알고 싶다. 그리고 당신들의 고통의 부피와 중량도 알고 싶다. 계량이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그걸 고집하는 것은 그게 동시대를 호흡하는 이의 도리라고 생각되는 까닭이다.

/이희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