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4월 상순이 가버렸다.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시절의 한 부분이, 그것도 꽃시절이 지나고 있다. 이른 봄을 장식하던 매화꽃은 거의 다 낙화한 상태이고, 산수유는 그 노란빛이 희미하게 바랬다. 살구나무는 꽃조각을 허공에 날리고 있고, 백목련도 일찍 핀 것들은 꽃잎을 땅바닥에 떨구고 있다.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이 불어서 완연한 봄을 못 느끼겠는데 많이 아쉬운 일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벚꽃 명소마다 절정이라서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는 소식이다.
봄(春)이라는 명사가 보다(見)라는 동사에서 나왔다고 말한 학자가 있었다. 국어의 봄이라는 단어가 눈과 관련돼 직접적이라고 칭찬하는 걸 나는 들었던 것이다. 그러면 오늘날 모든 언어 중에서 제왕 노릇을 하고 있는 영어의 봄은 어떤가. 영어로는 봄이 스프링(Spring)이니까 그 또한 감각적이다. 분수처럼 솟구치거나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는 힘이 느껴진다. 그래서 영미(英美) 쪽 사람들은 봄마다 도약하는 기분을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만큼 광범위한 감각을 맛보지는 못했을 것 같다. 우리들의 봄은 모든 자연이 곧 봄이기 때문이다. 보았던 것만이 아니라 앞으로 보게 될 물상이며 보고 싶은 대상도 봄인 까닭이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봄이면 행복한 정서대신 불행한 정서를 말한다. 모든 사람이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많은 이들이 해마다 ‘잔인한 봄’을 말하고 있다. 엘리어트의 유명한 장시 <황무지>의 첫 구절이 떠올라서 그러는 건 아니다. 한국은 지난 수십 년간 4월이면 정치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사건과 사고가 얼룩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 아픈 기억은 이제 역사가 되었다.
올해는 어째 조용히 지나가나 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로 인한 방사능 오염사태가 걱정이다. 일본이 그저께 최악의 단계인 7등급으로 격상시킨 걸로 보아 문제가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어제는 요오드나 세슘보다 더 독하다는 세로토늄이 검출됐다는 일본 쪽 뉴스가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우울한 소식은 내부에서 크게 도지고 있다. 카이스트 말이다. 올해 들어서만해도 학생이 네 명이나 자살했다. 교수도 자살했다. 그런데 사죄해 마땅한 총장이라는 자가 오히려 적반하장의 망발을 늘어놓고 있다. 미국의 명문대는 자살자가 더 많다며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다. 일흔 여섯, 그 많은 나이를 그는 어디로 먹었을까. 그가 카이스트의 총장으로 부임한 이후 자살자가 끊이지 않고 속출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의 항변에 수긍해줄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권력자가 보통 사람들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을 말하게 하는 것은 죄악이다. 돌이켜 탄식하거니와 그가 평소에 통섭(通涉)의 미덕을 배양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 것인가. 학생들을 공부기계로 보기보다는 피가 흐르고 감정이 있는 젊은이로 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 것인가. 학생은 제자이니까 아들 같이 손자 같이 여겼더라면 얼마나 좋았을 것인가. 아니 그보다는 위정자들이 덕망이 있는 자를 책임 있는 자리에 앉게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 것인가. 
금아 피천득의 수필 <신춘>을 다시 읽어본다. 내 경우에는 그 독후감이 기쁨이었는데 요즘은 슬픔으로 화학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글이다. 그 수필 중에 이런 대목이 있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이 많다. 그러나 좋은 사람이 더 많다. 이른 아침 정동 거리에는 뺨이 붉은 어린 아이들과 하얀 칼라를 한 여학생들로 가득 찬다. 그들은 사람이 귀중하다는 것을 배우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