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람 정판교(鄭板橋.1693∼1765)는 중국 양주팔괴(揚州八怪)의 한 사람이다. 양주팔괴는 청나라 때 괴이할 정도로 자유롭고 개성적인 그림을 그렸던 8명의 화가들을 가리킨다. 이들 가운데 가장 유명했던 정판교는 자신의 저서‘바보경’에서 바보철학을 흥미롭게 서술하고 있다. 그는‘바보’는 자신을 더 높은 단계로 인도하는 계단이라고 설명한다.‘바보’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배우고 끊임없이 가르침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보경’은 매일 거울을 보고“오늘 바보처럼 살았는가!”라고 자신을 향해 물어보라고 가르친다. 사실 바보가 된다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부단히 배우고 앞을 향해 나아가는 일이다.‘나는 바보스럽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나는 바보스럽다. 고로 나는 성실하다’‘나는 바보스럽다. 고로 나는 거리낄 것 없다’ 바보스럽고 우둔함은 성공을 가로막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성공을 도와주는 것이다. 조금은 어수룩하고 멍청하게 사는 것이 진정으로 현명한 삶이다.
인류의 고통과 분쟁은 지나치게 영리하고 강한 것에서 비롯된다. 모두가 소박하고, 너그럽고, 부드럽고, 다투지 않는다면 사람들의 삶은 분명 지금보다 행복해질 것이다. 
 바보경에 등장하는‘난득호도(難得糊塗)’의 호도(糊塗)는 어리석음, 흐리멍텅함, 똑똑치 못함, 엉망임, 분명치 못함, 애매모호함 등을 뜻한다. "난득호도(難得糊塗)는‘멍청하기가 힘들다’는 말이다.   지혜로우나 어수룩한 척하고, 기량이 뛰어나나 서툰 척하고, 언변이 뛰어나나 어눌한 척하고, 강하나 부드러운 척하고, 곧으나 휘어진 척하고, 전진하나 후퇴하는 척 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정판교의 바보경 주제인‘난득호도’의 내용을 소개한다.
▲첫째, 내지외우(內智外憂) 다. 속은 지혜로우나 겉으로는 어리석고 모자라는 척 하라.‘제 꾀에 제가 넘어간다.’는 말은 잔꾀를 부리는 사람에 대한 가장 적절한 표현이다. 미련한 사람은 스스로 총명한 척하여 결국 다른 사람의 웃음거리가 된다. 총명한 사람은 늘 숙이고 낮춘다. 이들은 순리에 맡기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이 보인다. 아무 일 없었던 듯이 태연하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태도를 분명히 밝히지 않고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자신의 강점을 일시에 드러내어 상대가 손을 쓰지 못하도록 압박한다. 중요한 것은 마음속에 상대방의 책략에 대한 대응방법을 이미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내교외졸(內巧外拙) 이다. 안은 교묘하나 겉으로는 서툴러라. 지혜로운 사람들은 일희일비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기쁜 일은 얼굴에 드러내도 무방하다. 그러나 좋지 않은 일일수록 드러내서는 안 된다. 일단 겉으로 드러내면 감정에 매몰되기가 쉽다. 원한도 마찬가지다. 일단 얼굴에 드러나면 감정의 힘이 배로 강해진다. 따라서 성공하고자 한다면 결코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셋째, 불비불명(不飛不鳴) 이다. 날지 말고 울지 마라. 벙어리인 척 하는 것이다. 어수룩한 척 하는 것은 일종의 위장술이다. 상대를 제압할 목적으로 자신의 자존심을 억누르고, 여러 치욕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전략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에서 부딪히는 갖가지 굴욕이나 수치심을 참지 못한다. 그러나 총명한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대응한다.
▲ 넷째, 심장약허(深藏若虛) 다. 깊이 감추어 마치 없는 것처럼 하라. 드러내지 않고 일을 행하는 것이다. 사람이 어수룩하게 살기는 어렵다. 그러나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총명과 지혜다. 작은 재주를 피우는 것은 진짜 바보의 거짓 지혜다.
성공을 추구하는 과정은 많은 우여곡절과 우회로 이루어진다. 어려움에 직면하거나 어쩔 수 없는 난처한 상황에 처했을 때 조금은 모자란 듯 보여도 무방하다. 인생의 긴 여정 속에서 항상 두 눈 부릅뜨고 바라볼 수는 없다.
한 순간에 시비를 판별하기 어려운 문제나 득실을 가늠하기 어려운 일에 대해서는 생각을 드러내지 않는 태도로 대응해야 한다. 이럴 때야말로 어수룩하고 모자란 것이 빛을 발하는 때이다. 시비가 분명한 것도 아름답지만 안개 속에서 보는 꽃도 아름답다. 모든 것이 아름답다면 때로는 어수룩해도 좋을 것이다. 

( 언론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