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羅蕙錫: 1896∼1948)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서양화가이다. 또한 여권운동의 선구자이자 진보적 사회사상가였다.
 호는 정월(晶月)이며, 수정 같은 달이란 뜻을 담고 있다. 나혜석은 수원의 부유한 관료의 딸로 태어나 우리나라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일본 도쿄의 여자미술학교에서 유화를 공부했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서 서울에서 첫 번째로 개인전시회를 열었다.
 초창기에 만든 ‘이른 아침’과 같은 목판화는 민중의 삶을 표현한 대표적 케이스다. 1922년부터 1932년까지 해외 여행을 떠났을 때를 빼고는 매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하여 입선과 특선을 한 재주 있는 화가였다.
 나혜석은 일본 유학시절부터 여성이 각성하여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여성들이 살림살이를 개량하는 구체적 방법 등을 담은 여러 논설들을 발표하기도 했다. 신여성이 주변의 낡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설득해 가는 과정을 담은 소설 <경희>를 발표하기도 했다. 혜석은 정신여학교에서 교원생활을 하면서 화가로서, 문필가로서 활동했다. 독립운동에도 가담하였다.
 혜석은 1920년 4월 10일 정동교회에서 김우영과 결혼식을 올린다. 이때 결혼식 청첩을 신문에 연일 광고함으로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1921년 장녀를 출산한 후, 서울 경성일보 ‘내청각’에서 풍경화 중심의 작품 70여점으로 두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1927년 혜석은 한국 여성화가로서는 최초의 프랑스 유학길에 오른다. 그곳에서 야수파 계열의 미술 연구소에 다니며 자신의 회화 예술에 커다란 전환을 시도한다. 당시 프랑스 파리에 있던 천도교 지도자 최린과의 만남으로 또 다른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그러나 수년이 지난 후, 파리에서 만난 최린과의 짧은 연애가 발각나면서, 35세의 나이에 이혼했다. 이후 '삼천리'지에 '이혼 고백서'를 발표하고 최린에게 정조 유린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로써 그녀는 조선의 도덕과 인습에서 비롯된 남녀불평등 문제를 제기한 여자가 되었다.
 나혜석의 정조관은 특별하다. 정조는 취미와 같은 것이어서 도덕이나 제도로 강제할 일이 아니라는 주장을 폈다. 당시 여성 교육의 상징이었던 현모양처 관에 대해서도 교육가들이 상업적으로 내세우는 주장에 불과하다고 역설했다. 여성에게 온화하고 부드럽기를 가르치는 것도 여자를 노예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성적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결혼을 하더라도 각자 배우자 이외 다른 이성을 만나 사교를 하는 것이 쉽사리 권태에 빠지지 않는 길이라는 주장을 폈다.
 하지만 그녀가 부르짖은 주장들은 당시의 사회에 용납되지 못했다. 그녀가 살았던 당시의 사회는 그녀의 급진적인 여성해방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의 냉소와 비난을 사게 되었다. 그녀가 이혼녀의 신분이라는 것도 그녀의 입지를 불리하게 만들었다. 이와 함께 그녀의 사회활동과 작품활동도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대의 신여성들 가운데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던 나혜석은 1948년 12월, 53세의 나이로 서울 시립병동에서 홀로 눈을 감았다. 자신의 신분을 감춘 채였다. 1944년 이후 몇 년 동안은 행려병자로 떠돌았다. 선각자는 진정 외로울 수밖에 없는가. 동시대의 신여성들 가운데서도 유난히 독보적인 존재였던 그녀의 인생을 보면서 묻지 않을 수 없는 질문이다.  
/김우연 객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