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이 넘는 수사 끝에 결국 김수임이 지목되었다. 당시 김수임이 베어드 대령과 동거했던 옥인동 집은 치외법권이 적용되는 한국 경찰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를 체포할 수 있도록 집 밖으로 불러낸 것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1등공신이었던 모윤숙이었다. 김수임은 1950년 4월 수사당국에 체포되었는데, 그날 김수임은 모윤숙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모윤숙의 집에 갔고 거기서 체포되었다.
김수임의 체포는 미국과의 외교마찰을 피하기 위해 친구였던 모윤숙의 집에서 이뤄졌다. 김수임의 연인이었던 이강국은 독일에서 공부한 엘리트 공산주의자였다. 1906년 경기도 양주 유서 깊은 양반가문에서 출생했으나 가산이 파산해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보성고보에 수석으로 합격했고, 이후 경성제국대학(지금의 서울대) 법문학부에 들어갔다. 이강국은 재학시절 좌익써클에 가담해 무산대중의 계몽운동에 앞장서는 등 이때부터 항일 공산혁명의 뜻을 품는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고등고시를 거쳐 판검사가 되는 안락한 길을 버리고 독일로 유학을 떠난다. 베를린대학 법과를 다니며 프롤레타리아과학동맹 등의 활동을 하던 그는 독일공산당에 가입하고 본격적인 공산주의자의 길을 걷는다.   
이강국은 남한의 단독정부수립 반대 투쟁을 전개하며 좌우합작을 통한 민주주의통일임시정부 수립을 원했다. 하지만 1946년 9월 미군정의 좌익검거령, 체포령이 떨어지자 월북을 선택했다. 이강국은 월북 이후, 북조선인민위원회 사무국장,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 인민군야전병원장 등을 역임했다. 그러나 이강국이 미 CIA의 비밀조직에 고용됐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1953년 북한당국이 이강국을 '미국 간첩'으로 규정하고 처형했다.
 모윤숙은 1909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나 이화여전을 졸업했고 김수임과 절친한 사이였다. 문인이자 시인인 그는 일제강점기에 친일단체인 조선문인협회를 비롯해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 국민의용대 총사령부 등에서 활동했다. ‘일본군의 싱가포르 함락을 찬양함’, ‘조선학도여 성전에 참여하라’ 등의 친일 글을 신문에 연재하기도 했다.  
해방 후 모윤숙은 미군정 및 이승만과 유착했고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역할을 하기도 했다. 유엔한국위원단위원장인 인도의 메논은 애초 남한 단독정부를 반대했는데 그가 입장을 바꾸는데 모윤숙이 크게 역할을 했던 것으로도 전해진다.   
후배 전숙희 씨에 의하면, 당시 수임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은 모윤숙 밖에 없었다. 재판에서 김수임을 변론하기도 했지만 모윤숙의 속내는 친구를 살릴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모윤숙은 1990년 82세의 일기로 사망했으며, 눈을 감을 때까지 자신과 관련된 김수임 사건에 대해선 끝내 함구했다.
‘한국판 마타하리’로 불리는 김수임에 관한 역사는 냉전시대의 종말과 함께  이데올로기의 시대, 분단 시대의 희생양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그에 대한 군사재판은 시작한 지 사흘 만에 전격적으로 사형 판결을 내렸고, 김수임의 간첩 행위에 동조했다는 혐의를 받았던 베어드 대령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얼굴이 희고 훤칠했던 경성제국대 출신 이강국과, 이화여전을 졸업한 신여성 김수임. 그녀의 죄는 혹시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을 사랑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녀가 목숨 던져 사랑했던 이강국도 5년 뒤 북한 땅에서 박헌영과 함께 간첩죄로 사형되었다.
/김우연 객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