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착각의 동물’이라고 합니다. 몇 사람이 같은 영화나 소설을 보고난 후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떤 이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을 다른 사람이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똑같은 이야기라 하더라도 전달하는 사람에 따라 그 내용이 천차만별인 것도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일입니다.
1년 전쯤 교육방송에서 방영되었던 ‘인간의 두 얼굴’이라는 프로그램은 인간의 착각에 대해 잘 보여주었습니다. 병원에 찾아온 피실험자와 의사가 문진을 하면서 대화를 시작합니다. 이 때 의사가 일부러 바닥에 볼펜을 떨어뜨리고 허리를 굽히는 사이에 책상 안쪽에 쪼그리고 숨어있던 다른 의사가 일어나 처음 의사인 것처럼 의자에 앉게 됩니다. 즉 피실험자 몰래 의사가 바꿔지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 피실험자가 의사가 바꿔진 것을 알 수 있느냐를 확인하는 실험입니다.
실험 결과 아무도 의사가 바꿔진 것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한 명을 추가로 실험에 투입합니다. 모두 세 명의 의사가 등장하게 됩니다. 그것도 머리형태나 얼굴유형이 확연히 다른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피실험자는 전혀 알아채지 못합니다. 실험이 끝난 후 피실험자들은 ‘그럴 리 없다’며 많이 황당해 하더군요.
사람들은 통상 자기가 보고 들은 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똑같은 사물이나 현상이라 하더라도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이 있고, 또 잘못 보게 되는 경우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 날 방송에서 전문가들은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경향이 있다’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경찰이란 직업은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목격자와 같은 참고인 등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그들은 서로 자신에게 유리한 주장만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관이 선입견을 갖게 된다면,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나 진술 등을 주로 채택하게 될 가능성이 높게 됩니다. 저는 교육방송을 보면서 우리 경찰이 순간순간 실체적 진실에 대해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매사 신중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하였습니다.
동료 경찰관 한 명이 작년 초 뇌물수수 사건으로 구속되어 파면되었다가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되어 복직하게 되었습니다. 당사자의 피해가 어느 정도였을지는 짐작하기조차 어렵습니다. 무죄추정의 원칙 등 헌법상 기본권 보장의 원칙과 정신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진교훈 정읍경찰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