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임은 1950년 6월 16일, 다섯 발의 총탄과 함께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6.25 전쟁이 일어나기 9일 전이었고, 재판이 시작된 지 사흘 만이었다. 당시 나이 39세. 북조선인민위원회 외무상을 지낸 이강국을 사랑했고 미8군 사령부 헌병감이었던 베어드 대령과 동거했다. 김수임은 베어드 대령에게서 빼낸 고급 군사 정보를 이강국에게 넘겨줬다는 혐의를 받았다.
김수임(1911~1950)은 경기도 개성에서 가난한 홀어머니의 딸로 태어나 11살에 민며느리로 팔려갔다. 그녀는 4년 만에 야반도주를 감행했고, 미국인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학교에 진학하여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했다. 김수임은 영어회화에 뛰어났던 인텔리 여성으로 1945년 미군정청이 생기면서 통역관으로 들어간다. 이듬해 헌병감이 된 베어드 대령의 특별자문으로 고용돼 1949년 6월까지 미정부의 월급을 받았다.   
수임은 스물 다섯(1936) 나이에 ‘여성’ 지 창간호에 ‘화제의 여성’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당시 선교회 사무원으로 일하던 그는 폭스트롯(서양춤의 일종)을 잘 추는 여성이었다. 남한 정부 수립 후 주한미국대사관의 통역관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수사기관의 고문으로 있던 베어드와 외인주택에서 동거하면서 사교계의 여왕으로 부상하였다.
이강국을 처음 만난 것은 1929년. 학교 선배인 모윤숙이 소개했다. 경성제대 법과 대학생이던 그가 공산주의 활동으로 함흥 감옥에 투옥되었던 시절이다. 하지만 평양에 간 이강국이 돌아오지 않자 미군 사령관의 구혼을 받아들이고 그와 함께 산다.
공산당 거물이 된 이강국을 다시 만난 것은 해방 후다. 이강국이 서울로 돌아오고 수임은 사령관 몰래 그를 만난다. 46년 말 이강국에 대한 체포령이 내려지자 사령관과 함께 사는 옥인동 집에 숨겨두었다가 사령관 차로 월북시킨다. 그 후 이강국은 김일성 정권에서 초대 외무상으로까지 발탁되었다.
베어드와의 사이에 아들을 하나 낳았는데, 그가 김원일 씨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고 있으며 라 시에라 대학의 교수로 일하고 있다.
 김수임에 대한 1천 페이지 분량의 미 기밀문서를 발견한 사람은 아들 김원일 씨이다. 비밀자료 기록에 의하면 당시 베어드 대령은 민감한 정보에 접근권이 없었다. 따라서 김수임이 북측에 넘겨줄 기밀은 없었다. 또 기록에는 베어드 대령과 다른 미 육군 장교들이 김수임을 변호할 수 있었지만 자신들의 난처함을 피하기 위해 서둘러 한국을 떠난 것으로 되어 있다.
김수임은 한국 경찰의 고문에 의해 그녀가 하지 않은 일도 허위 자백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재판을 받을 당시 피고석의 여자가 김수임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혹은 고문으로 인해 망가진 모습 때문에 김수임이 아니었다는 말이 나올 수 있었을 것이라고도 한다. 어쨌든 김수임이 혹독한 고문을 받은 것만은 확실하다.
전숙희 씨는 여간첩으로 지목된 김수임을 변호한 책에서, ‘수임 언니는 사랑한 죄밖에…살벌한 현대사의 희생양’ 이라고 말했다. 전 씨는 김수임의 이화여전 영문과 9년 후배이고 외인주택 옥인동 집에서 함께 거주한 적도 있다. 전 씨가 아는 김수임은 평생을 사랑에 목말라했고 외로움을 많이 탔던 고아 소녀였다. 어쨌든 이강국은 김수임의 도움으로 무사히 월북했다. 북한 쪽 발표에 군정 당국과 남한의 정보조직은 발칵 뒤집어진다.
/김우연 객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