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AC : 봄나물
논설위원 : 이희찬
봄은 처녀이다. 그래서 시인 이은상은 시 <봄처녀>를 썼을 것이고 그에 공감해서 작곡가 홍난파는 곡을 붙였을 것이다. 해마다 봄이면 <봄처녀>는 국민가곡으로 승격된다. 그래서 첫 소절 “봄처녀 제 오시네. 새풀 옷을 입으셨네.”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귀에 익은 구절이다. 누구나 마음만 먹는다면 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 절까지 노래를 뽑을 수 있을 것이다. 그야 나처럼 음치 수준으로 내몰린 사람이라면 삼가야겠지만.
그런데 봄은 처녀의 가슴에만 오는 것은 아니다. 식탁 위에서도 봄은 이미 와 있다. 상추를 비롯해서 봄동과 시금치 같은 푸른 채소들이 입맛을 새롭게 살리고 있는 것이다. 우수 경칩이 지나고 겨울이 완연히 물러갈 때쯤이면 지난해 담갔던 김장김치에 물리기 마련이다. 묵은 김치가 몸에 좋다지만 신맛을 즐기는 것도 한도가 있는 것이다.
신세대들은 잘 모르겠지만 이맘때쯤이면 채소 말고도 입맛을 살려주는 게 있었다. 요즘이야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채소들이 식탁을 차지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봄나물이 자리를 대신했다. 달래며 냉이며 쑥이 뭐 얼마나 맛이 있는 거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달랐다. 워낙 배고프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그때의 봄나물들은 재배한 게 아니고 자연에서 저절로 자란 것이라 나물로 무치거나 국을 끓이면 향내가 진동했다.
동무들아 오너라 봄맞이 가자
너도 나도 바구니 옆에 끼고서
달래 냉이 씀바귀 나물 캐오자
종다리도 높이 떠 노래 부르네
김태오가 작사하고 박태현이 작곡한 <봄맞이 가자>라는 동요이다. 요즘의 어린이들에게는 낯선 노래이지만 늙어가는 세대에게는 귀에 익은 노래이다. 초등학교인 국민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도 다들 흥얼거렸던 까닭이다. 나도 그런 사람 중의 한 명인데, 지난 세기의 50년대 후반과 60년대 초반에는 밭두렁에서 처자들이 나물을 캐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른 봄에는 쑥과 달래와 냉이와 씀바귀를 캐고 좀 따스해진 봄에는 미나리와 망초를 캤다. 그리고 이쪽 전라도 지방에서는 달래를 달롱개, 냉이는 나숭개, 망초는 담배나물이라고 불렀다.
해마다 이때쯤이면 나물을 캐는 사진이 신문에 실린다. 그러나 사진에 나오는 이들은 예전처럼 흥겨운 모습이 아니다. 젊은 아줌마며 처녀들은 볼 수가 없고 꼬마 계집애들도 볼 수가 없다. 들판이나 밭두렁에서 나물을 캐는 이는 늙은 할머니들이다. 짐작하건데 그녀들은 60대이거나 70대 초반일 것이다. 어쩌면 더 나이가 많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사진들이 하도 애틋해서 스크랩해두었는데 잠이아니 올 때면 머리맡에 두고서 꺼내 보는 버릇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십 년 전의 반가운 기사가 생각난다. 그 기사는 한국 사람들의 채소 섭취량에 관한 거였다. 그래서 그 신문기사도 스크랩해두었었다. 미국과 프랑스는 말할 것도 없고 이탈리아보다도 한국의 채소 섭취량이 많았다. 1인당 채소 섭취량이 연간 187.6kg으로 세계 1위라는 거였다. 같은 동양인으로서 일본인이 겨우 112.6kg인 것을 비교해 크게 자랑스러웠음은 물론이다. 아마 한국인은 봄나물 섭취량도 세계 최고일 것이 분명하다. 그것 또한 자랑스러운 일이다. 모든 봄나물은 비타민의 보고(寶庫)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마음 속 향수는 어쩔 수 없는가보다. 언제 여유가 생기면 주말에 시골로 나가서 부끄럽지 않은 마음으로 봄나물을 캐보려고 한다.
/이희찬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