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아침을열며] 이기붕과 박마리아 2

박마리아가 누리던 무소불위의 권력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승만 정권의 무능과 포악성, 극에 달한 부정부패를 견디지 못한 국민들이 서서히 들고 일어서기 시작했다.
1960년 제5대 정ㆍ부통령 선거는 전면적인 관권 부정 선거로 치러졌다. 3인조, 5인조 부정 선거였다. 이때 박마리아가 회장을 맡고 있던 대한부인회를 비롯한 여성 단체들이 동원되었다. 대한부인회는 전국 대회를 통해 이승만과 이기붕을 지지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하기도 했다. 이런 바탕 위에 이승만이 대통령에 이기붕은 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4·19 혁명을 불러와 자유당 정권이 붕괴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장기 집권의 야욕을 부렸던 이승만 정권의 행태에 분노한 국민들이 일으킨 첫 번째 봉기는 1960년 3월 15일 전국 대학생들의 시위였다. 3ㆍ15 시위가 벌어진 지 한 달 후인 4월 19일에는 전국적으로 고등학생들이 시위를 일으켰으며, 6일 후인 25일에는 대학 교수들이 거리로 나와 부패한 이승만 정권의 퇴진을 외쳤다.
정국이 심하게 요동을 치는 상황임에도 박마리아는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이 가진 권력의 힘을 이용해 민중들의 분노를 막아보려고만 했다. 4월 19일 전국적인 학생 시위가 일어나기 직전, 박마리아는 반공청년단을 향해 “당신들은 3백만 단원들을 가지고 있다면서 그까짓 학생들 시위 하나도 처리하지 못하는가!”라고 엄포를 놓았다.
이에 반공청년단 본부에서는 정치 깡패들을 동원하여 시위에 참석한 고려대 학생들을 마구잡이로 집단 폭행했는데, 이 사건이 학생들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분노를 촉발시켜 마침내 4월 19일 전 국민의 항쟁으로 번지게 되었다.
권력의 단맛에 취해 이성을 잃고 있던 박마리아와 이기붕 부부는 학생 시위대로부터 분노의 표적이 되었다. 박마리아 부부가 사는 저택이 학생 시위대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자 이기붕 일가는 신변의 위험을 느끼고 경기도 포천에 있는 육군 제6군단으로 피신했다.
국민들의 대규모 저항에 부딪친 이승만도 더 이상 권좌에 있을 수 없었다. 이승만은 육로로 가지 못하고 헬기를 타고 경무대를 빠져 나가 비행기를 타고 하와이로 망명을 했다.
이승만은 마지막 가는 길에 이기붕 일가에게 자신의 차를 보내 경무대 별관 옆에 있던 관사로 이들을 피신케 하였다. 관사로 피신한 이기붕 일가는 그곳에서 하룻밤을 머물게 되었는데, 이것이 그들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보낸 하루였다.
1960년 4월 28일 박마리아 일가는 결국 경무대 별관에서 가족 동반 자살을 감행했다. 당시 육군 소위로 복무 중이던 그녀의 아들 이강석이 권총으로 이기붕과 박마리아, 동생인 이강욱을 차례로 쏘고 자결한 것이다. 나중에 국회조사단에 의해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이기붕과 박마리아는 먼저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했으며, 그 뒤에 이강석이 부모와 동생이 살아날까 봐 총을 쐈다고 한다. 시위대가 이기붕 일가가 살던 저택을 수색해 보니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고가품 냉장고와 TV, 전축 등의 호화로운 물건들이 가득했다. 비닐하우스도 없던 시절 그의 집에서는 수박이 나왔다.
빈곤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친일파와 독재 정권과 결탁하며 신분 상승을 달성했던 여걸(?) 박마리아는 이렇게 오욕으로 얼룩진 인생을 마감했다. 박마리아가 살던 집은 국가에 환수되었고 집터에는 4·19혁명기념도서관이 들어 서 있다.
/김우연 객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