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심씨>조선조 500년 정계 주름잡은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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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심씨>조선조 500년 정계 주름잡은 가문
<청송심씨>조선조 500년 정계 주름잡은 가문
기사입력 2011-02-09 오후 6:24:00 | 최종수정 2011-02-09 오후 6:24:09

시조 심홍부 증손 덕부 청송백 봉해져 본관 삼아
조선시대 정승 13명 · 왕비 3명 · 부마 4명 배출
붕당 시작 심의겸 · 한국계 日도예가 심수관 유명



시조 심홍부(沈洪孚)는 고려 때 벼슬을 지냈다. 그의 증손 심덕부가 고려 공민왕 때 왜구를 격퇴하여 공을 세운 뒤 청송백에 봉해졌다. 그 뒤 후손들이 청송을 본관으로 삼았다. 청송은 경상북도 청송군의 지명이다.

 시조의 증손인 심덕부. 심원부 형제에서 크게 두 파로 갈린다. 이성계의 역성혁명 후 좌의정을 지낸 형 심덕부의 후손은 대대로 서울에서 벼슬을 지냈다. 그러나 동생 심원부의 자손들은 새 왕조의 벼슬을 마다했다.

 현재 경북 청송군을 비롯해 영남 일대에 퍼져 사는 심씨들은 거의 심원부의 후손들이다. 이들은 형 집인 심덕부 집안을 가리켜 "서울집"이라 부른다. 그 숱한 정승, 문형(文衡), 왕비들은 모두 서울집 출신들이다. 오늘날에도 각계의 저명인사들은 대부분 심덕부의 후손들이다.

 서울집은 심덕부의 아들 7형제에서 일곱 개 파로 나누어진다. 7형제가 모두 입신출세하여 이로부터 자손이 크게 번창 한다. 그 중에서도 넷째 집인 인수부윤공파와, 다섯째 집인 안효공파(심 온)가 번성하여 굵직한 벼슬을 도맡아 했다.

 심 온은 세종의 장인(그의 딸이 세종비 소헌왕후)으로 영의정을 지냈다. 그러나 그는 임금의 장인이면서도 상왕인 태종의 비위를 거슬려 끝내 사약을 받았던 비운의 주인공이다. 태종은 아들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도 병권만은 그대로 쥐고 있었다.

 심 온의 아우인 심 정이 이에 불만을 품고 "명령이 두 곳에서 나온다"고 말한 것이 태종의 귀에 들어간 것이다. 심 정은 국문을 당하고, 심 온은 "불평의 두목"으로 지목된다. 심 온은 결국 명나라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체포돼 사위 세종이 내린 약사발을 받는다.

 조선조 당쟁 발생의 직접적인 요인이 된 사람은 선조 초년의 심의겸과 김효원이다. 두 사람의 대립은 < 전랑(銓郞) >이라는 관직을 에워싼 암투에서 시작된다. 이조(吏曹)에 속해 있던 전랑은 비록 그 자리는 낮았으나 관리의 임면을 장악하고 있는 중요한 자리였다. 때문에 이 자리의 임명은 이조판서라도 간여하지 못하였고 반드시 전임자들이 추천하도록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김종직 계통의 신진세력인 김효원이 전랑에 천거된다. 이 때 이조참의로 있던 심의겸은 반대 의견을 낸다. 김효원이 일찍이 명종 때의 권신이던 윤원형에게 아부한 사실을 들어 이를 반대한 것이다. 그러나 선조 7년 결국 김효원이 이조정랑으로 발탁되었다.

 김효원의 임기가 끝나자 심의겸의 아우 심충겸이 그 자리에 추천됐다. 이번에는 김효원이 < 전랑의 직분이 척신의 사유물이 될 수 없다 >하여 반대한다. 이때부터 두 사람 사이에 불화가 싹텄던 것이다.

 마침내 구세력은 심의겸을 중심으로 서인, 신세력은 김효원을 중심으로 동인이라 하여 동서분당이 발생했다. 이때 부제학 이이는 심의겸을 개성유수, 김효원을 부령부사로 전직시켜 당쟁을 조정하려 했으나 이미 뿌리박힌 양당의 대립은 해소하지 못했다.

 그 뒤 심의겸은 사직하고 낙향했다가 다시 예조판서로 등용된다. 얼마 후 정인홍의 탄핵을 받았으나 이 이의 변호로 무사했고 그 후 전주부윤을 지낸 뒤 대사헌이 되었다. 그러나 이 이가 죽은 뒤 동인이 득세하면서 서인이 몰락하자 파직 당했다.

 당시 김효원의 집은 서울 동쪽 낙산 밑 건천동에 있었다. 그래서 그 일파를 동인이라고 불렀다. 반면 심의겸의 집은 서쪽 정릉방에 있었기 때문에 그 추종자들을 서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초기에는 대체로 동인이 득세했다. 동인에는 이 황과 조 식의 문인이 많았고, 서인에는 이 이와 성 혼의 계통이 많아 당쟁은 학파의 대립을 이루었다. 얼마 후 동인은 다시 남인, 북인으로 나누어진다. 서인에 대한 강경파를 남인, 온건파를 북인이라고 했다. 북인은 다시 대북, 소북으로 분열됐으며, 광해군 때는 대북이 정권을 전담했다.

 오랫동안 야당에 머물렀던 서인은 광해군에 반기를 들고 정권을 전복, 그를 폐하고 인조를 옹립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인조반정이다. 이후 오랫동안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서인은 반정에 공이 있는 자를 훈서, 그렇지 않은 계열을 청서라 하여 갈라선다.

 그 뒤 남인은 청남, 독남으로 나누어지고 서인은 노론, 소론, 시파, 벽파로 갈라진다. 이때부터 죽고 죽이고, 내쫓고 내몰리는 악순환이 360년 동안 계속된다.

 심의겸은 비록 척신 출신이지만 사림들 간에 명망이 높아 선배 사류들에게 촉망을 받았다. 그는 분당이 아니었다면 대제학이나 정승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결국 동인에게 내몰렸으니 자신은 물론 심씨 가문에도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심수관(沈壽官.82세.1928-)은 일본의 한국계 도예가다. 그는 1598년 정유재란 때 일본에 끌려와 박평의와 함께 사쓰마도기를 연 심당길(沈當吉)의 14대손이다. 가문을 이어 일본 도예계를 주도했던 심수관은 와세다 대학 정경학부 졸업 후 한때 정치에 뜻을 두어 국회의원의 비서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나 부친의 병으로 낙향, 도예 수업을 쌓았다. 1946년 13대 심수관(沈壽官)이 죽자, 14대 심수관을 습명(襲名:선대의 이름을 계승함)한다. 그 후 도자기 제작에 힘써 일본 도예계를 이끌었으며, 1989년 한국 명예총영사가 되었다.

 심수관 가(家)는 한국 성(姓)을 고집하며 400여 년 간 가업을 계승해오고 있는 사쓰마 도기의 종가로 유명하다. 13대부터는 이름까지 그대로 습명하는 전통을 만들었다. 그 후손들은 뛰어난 예술혼으로 '사쓰마 도자기' 명성을 드높였다.

 심당길은 전라북도 남원에서 살다가 사쓰마(현재 가고시마현) 번주였던 시마즈 요시히로에게 끌려간 조선 도공 중 한 사람이다. 1597년 왜군 10만명은 조선의 전라도 남원성을 공격했다. 임진왜란 이후의 재침이었다. 바로 정유재란이다. 이 때 왜군은 심수관 등 70명을 납치했다.

 심수관 가(家)는 1873년 빈 만국박람회에 금수목단 문화병을 출품해 사쓰마 도자기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리면서 일본을 대표하는 도예 명가로 자리 잡았다.

 심수관 집안은 14대에 이르기까지 독자로만 가문을 이어왔으며 한국계 동포들과 결혼했다. 15대 아들 2명 가운데 장남이 습명했으며 지금도 가고시마현에서 도예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도예가로서 한국인의 자존심을 잃어버린 적이 없다. 정유재란 당시 선조가 쓰던 망건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심수관은 아직도 예술가로서 꿈을 가지고 있다. 자연과 인간을 모두 담은 작품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청송심씨는 조선조 500년을 통해 정승 13명, 왕비 3명, 부마 (임금의 사이) 4명을 낳았다. 사색의 주류인 서인집으로, 혹은 왕실의 외척으로, 이 나라 정계를 주름잡은 집안이다.

 청송심씨의 상신(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13명은 전주이씨 22명, 동래정씨 17명, 안동김씨 15명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숫자다. 이 가운데 영의정은 9명으로 전주이씨 11명 다음으로 많다. 왕비 3명은 청주한씨 5명, 여흥민씨, 파평윤씨 각각 4명에 다음가는 숫자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811명이 있다. 문과 194명, 무과 37명, 사마시 578명, 의과 2명이다. 항렬자는 19世 지(之), 20世 능(能), 21世 의(宜), 22世 택(澤), 23世 상(相), 24世 섭(燮), 25世 재(載), 26世 보(輔), 27世 규(揆), 28世 용(用), 29世 녕(寧), 30世 기(起), 31世 장(章), 32世 후(厚), 33世 량(亮), 34世남(南), 35世 무(茂)이다. 인구는 2000년 현재 212,717명이다.

한편 심(沈)씨는 경주 남원 밀양 삼척 순천 신안 의령 전주 정선 청산 청송 청주 청풍 충주 풍산 홍성 등 총 16개의 본관에 인구는 2000년 현재 252,255명이다.

/언론인 · 성씨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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