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한낮에도 영하의 기온을 견뎌야 하니 추위가 보통 매서운 게 아니다. 아침에 출근할 때나 저녁에 퇴근할 때면 어깨를 움츠리지 않겠다고 다짐하건만 찬바람 앞에서는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가 없다. 귀는 떨어져나가는 것 같고 뺨은 시리다 못해 얼얼하다. 그런데 정작 괴로운 것은 추위뿐만이 아니다. 전국은 지금 구제역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또 조류독감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신종플루에 걸린 환자 수 명이 사망했다는 뉴스도 있다. 그에 더하여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연초 때면 복을 말하고 소망을 말하고 성취를 말하지만 그때뿐이다. 복 받기도 어렵고 소망을 말하기도 어렵다. 성취는 더더욱 어렵다. 이게 매년 반복되는 현실이다. 그러니 더 높은 가치인 평화며 안녕이며 행복이 사람들에게 있을 리가 없다. 인생을 살아낸다는 것이 녹녹치 않음을 나이를 한 살 더할 때마다 절실하게 느끼는 것이다. 그럴 때면 어른이 어린이보다 나은 게 별로 없구나하는 깨달음이 면도날처럼 뇌리를 긋고 지나간다.
@연말연시 때면 나는 이마의 피를 닦으며 추사 김정희를 만나러 간다. 그러면 추사는 늘 같은 집 같은 주소에서 나를 맞아 준다. 그의 집은 제주도에 있는데 비뚤어진 초가집이다.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은 초가집 끝이 각이 져서 얼핏 보면 기와집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일 뿐이다. 추사가 거처한 집은 분명히 초가집이다. 초가집 앞에는 두 그루의 소나무가 있고 뒤안에는 두 그루의 잣나무가 있다. 하늘은 높고 대지는 차가운데 초가집의 창문은 둥글고 허하다. 나는 그 허한 창문을 바라보며 추사를 부르는 것이다. 그러면 추사는 창문을 열고서 웃는 낯을 한다. 그리고는 금방 뜰로 나와서 내 두 손을 붙잡고서 반갑게 맞아들인다. 
@내가 추사의 세한도를 처음 보았을 때가 언제였던가 헤아려본다. 실물은 수 년 전 겨울에 전주국립박물관에 특별 전시됐을 때 봤지만, 책을 통해서는 중학교 1학년 때가 아닌가 한다. 이항성 선생이 펴낸 미술 교과서였는데 나는 그때 추사의 세한도가 어째서 좋은 그림인지 알지 못했다. 추사의 세한도가 사람의 가슴을 파고드는 명작임을 알기 위해서는 누구나 나이가 들어야 한다. 가슴을 파고드는 고통을 통과의례처럼 겪지 않으면 안 된다. 꿈만 많은 나이 어린 학생들은 그걸 알 까닭이 없다. 누구나 인생은 선험적으로 살아낼 수가 없는 것이다. 특별한 소년이라면 자신의 미래를 어렴풋이 짐작이야 할 수도 있겠지만.
@추사의 세한도는 국보 180호이다. 1974년 12월31일에 지정되었다. 나는 그때 그 사실을 몰랐으나 그게 내 잘못은 아니었다. 나는 그날 내 운명이 골고다로 향하고 있음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때 만 스무 살이 넘은 스물 한 살의 마지막 날을 보내면서 고민 가득한 이마를 짚고 있었다. 어쩌면 두 눈이 젖고 있었는지도 모르겠고 밤새 눈이 내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말한다. 인생은 살아볼만하다고.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인생은 정말 살아볼 만한 것일까.
@인생의 온갖 고민에 짓눌릴 때마다 나는 추사의 세한도를 보면서 위로를 받는다. 아무리 불행한 운명이 닥친다 해도 추사의 세한도를 보면 넉넉히 견딜만할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들은 불행을 느낄 때마다 인생의 살 가치에 대하여 묻는다. 그러면서 속으로 자위하는 대답을 내린다. 나는 이제 인생의 살 가치를 물어보지 않으려고 한다. 불행하면 불행할수록 인생의 맛이 진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석청(石淸)으로도 표현이 안 된다. 불행과 고통의 순간은, 하느님의 값지고 값진 영약(靈藥)이 고아지는 때라고 나는 믿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