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내 머릿속에 있는 ‘전주’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전주가 고향이 아니어서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전주시민이 된 오늘날에는 전주시를 자랑하고자 하는 마음이 누구보다 강하다. 경기전을 비롯하여 객사와 풍남문 등 자랑할 것은 상당히 많다고 여겨지지만, 때로는 유서 깊은 옛날의 ‘온고을(全州)’의 자취는 점점 퇴색되어지고 거대한 아파트 등 ‘도시화(urbanization)의 물결’이 크기만 하여 그 명암이 교차하곤 한다.  
 
 어린 시절 자란 곳이 전북 이리시 외(당시 익산군)였으니 이리시내(현 익산시내권)에 나가는 일은 학교에서 걸어서 단체로 관람한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 전부였다. 서너 차례 본 단체영화였지만 어린 우리들의 눈물을 빼고도 남은 ‘저 하늘에도 슬픔이’라는 영화가 단연 으뜸으로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초등학교 시절 전주에 관한 추억은 4학년 때 전주에 있는 문화연필공장을 견학한 것이 전부다. 그러다 중학생이 되어 어찌 전주행을 하게 되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리에서 출발하여 전주시내 쪽으로 곧바로 가다 보면 팔달로라는 큰 도로(현재도 그렇지만)의 어디쯤인가에 넓은 도로에 육교가 있었고 그 근처에 당시 조미료의 대표주자였던 ‘미원’을 광고하는 탑이 있었다.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지 당시 전주는 인구 3백만 명을 자랑하던 전라북도의 도청소재지라고만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딱 두 번 다녀간 전주가 현재는 서울을 넘어 세계적인 외국의 대도시 같은 느낌이었으니, 전주가 짓누르는 압박감은 시골뜨기에게는 너무 크기만 했다. 
 
 또 한 가지의 추억이 새롭게 떠오른다. 그것은 고교시절 결혼한 누나가 전주 버스터미널이 있던 현재의 추천대교을 건너 우회전하여 짧지 않은 시간 걸어 도착한 서신마을(현 서신동)이다. 단칸방에서 전세로 살고 있던 누나 집에 도청소재지 전주를 어엿한 고교생으로서 물어물어 처음으로 찾아간 것이다. 현재는 전주의 최고 밀집지역으로서 뉴타운이 되어버렸지만, 당시의 서신마을은 기와집과 초가집과 슬레이트 지붕으로 된 집들이 듬성듬성 있고 집집마다 감나무가 산재해 있었던 기억이 난다. 
 
 결혼 후 첫 아들을 낳고서 미국 여행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다녀온 직후 일본에 유학할 것을 작심, 일본의 고도(古都)인 교토(京都)에서 지냈다. 이 후 일본인 민속학자 일행을 안내할 기회가 있을 것 같아 미리 전주의 구석구석을 모르는 전주 시내 모 백화점에도 가보고 ‘객사’와 ‘경기전’은 물론 국립 전주박물관과 덕진공원, 최명희문학관, 소리의 전당, 풍남문, 영화의 거리, 전주동물원 등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해 두었다. 특히 전주향교는 건곤조화(乾坤造化)의 신비를 간직한 길지(吉地)에 위치한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향교 중 하나라고 해도 좋다고 본다. 650여 년의 역사의 굴곡을 겪어오는 가운데 한국의 전통적인 고유문화를 전승하고 미풍양속을 면면히 이어온 자랑스러운 향교라고 안내책자와 함께 설명해 준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렇지만 향교만이 아니라 인근에 있는 송광사와 금산사 등의 유명 사찰까지는 안내하지 못했지만, 설사 서양종교로서 이미지가 깊어진 전동성당 등을 둘러봐도 성당 또한 한옥마을 인근에 있어 이미 확연하게 도시화되어버린 ‘전주’는 옛날의 정취를 흠뻑 느끼기에는 아쉬움이 크기만 했다. 
 
 결국 자랑거리 많은 전북의 도청소재지 전주에는 옛 자취가 없는 건 아니지만, 두 줄기로 흘러내리는 전주천 주변만 보아도 고층아파트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어 아쉬운 터에 그런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으로서 ‘아쉬움’은 ‘안타까움’으로까지 확장되는 느낌에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이런 생각이 곧 ‘전주의 명암’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혁신도시가 최근에는 세워지고 있어 전주의 상징이 거대한 도시화의 물결에 파묻히는 양상이 적지 않다. 그토록 그리던 완주군과의 통합은 이루어지지 못한 채 말이다.

 조 기 호/ 수필가ㆍ원광보건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