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의 향기(Scent of a woman)’라는 영화가 있었다. 1992년 작으로 마틴 브레스트 감독에 알 파치노가 주연한 미국 영화다. 프랭크(알파치노)는 수류탄 사고로 맹인이 된 퇴역 중령으로 인생의 덧없음을 못 견디고 화려한 자살여행을 떠난다. 여기에 동반자로 명문 베어드고등학교 졸업반인 찰리(크리스 오도넬)가 아르바이트로 동행 한다. 

 여행도중 프랭크는 어느 고급 레스토랑에서 남다른 후각으로 뒷자리에 앉아있던 도나(가브리엘 엔워)라는 여인의 향기를 맡고 사용한 비누 이름과, 목소리로 그녀의 성정까지 알아맞힌다. 처음만난 도나에게 춤을 청하자 그녀가 실수할까봐 망설이지만 ‘실수로 스텝이 엉키면 그게 바로 탱고지요, 인생과 달리’ 라고 말한다.  ‘뽀르 우나 까베사(por una cabeza)’라는 곡에 맞추어 멋진 탱고를 춘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프랭크는 권총자살을 시도 하지만 찰리는 끈질기게 설득하면서 ‘스텝이 엉키면 그게 바로 탱고에요‘라고 프랭크가 했던 말을 피드백 시킨다.  프랭크는 찰리의 따뜻한 심성과 성실함을 알게 되고, 그와의  인간적인 교감으로 마침내 자살을 포기 한다.
 
 그러나 찰리에게는 학교에서 상벌위원회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떠나기 며칠 전, 몇 학생이 등교시간에 깐깐한 교장선생에게 풍선을 터뜨려 물과 밀가루를 뒤집어쓰게 하는 장난을 친다. 그것은 교장이 학교 이사회에 아부해서 고급 승용차를 선물로 받았다는 이유였다. 찰리와 친구 한명이 사건 하루 전날 밤, 주모자들의 준비과정을 목격했는데, 그들이 누구인지 말하라고 교장이 전교생 앞에서 다그치며 이름을 대지 않으면 퇴학을 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찰리는 말할 수 없다고 버틴다.  이때 프랭크가 보호자로써 일장 연설을 한다. 요지는 ‘명예를 존중하는 것이 이 학교의 전통인데 친구를 밀고하도록 강요하는 이 학교의 정신은 사라졌다. 자기 장래를 위해 누구도 팔지 않은 용기 있는 이 순수한 학생을 죽이지 말라’하고 열변을 토한다. 이에 온 청중이 감동하고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진다. 분위기는 역전된다. 상벌위원들이 다시 협의한 결과 찰리에게 더 이상 책임을 묻지 않기로 선포한다. 그 순간 전교생이 환호의 함성을 터트린다. 정신적 가치는 미국에서도 최우선으로 존중되고 있었던 것이다. 알 파치노의 명연기가 압권이었다.
 
 비누향기는 여인에게만 있는 건 아니다.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냄새가 난다’로 시작되는 강신재의 대표작 『젊은 느티나무』가 있다. 50~60년대 젊은이들의 사랑을 묘사한 단편으로 1960년 1월 사상계에 발표된바 있다. ‘그에게서’란 물론 소설의 남자 주인공이다. 나도 고등학교3학년 때 이 소설을 읽었는데  그 첫 구절이 지금까지 기억에 새롭다. 사실 누구나 좋은 냄새를 내기 위해 신경을 쓸 것이다.  당나라의 양귀비도 여러 가지 꽃이나 과일 등으로 만든 화장수로 현종의 사랑을 독차지했다던가.
 
 그러나 겉치레의 향내보다는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울어 나오는 은은한 향취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삶의 향훈일 것이다. 프랭크의 예민한 감각이 찾는 것은 단순히 비누이름이 아니라 주위의 따뜻한 관심과  진정한 사랑을 열망하는 사람의 향기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