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인 조프델리(33)가 알츠하이머에 걸려 하루가 다르게 정신이 혼미해져가는 자신의 어머니 주디(70)를 위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2개월 전 일이다. 그때는 그래도 ‘내가 누구인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아들이 부르는 노래를 곧잘 따라 부르기도 하고 아들의 얼굴에 뽀뽀도 하며 즐거워 했었다. 2개월이 지나 이제 그의 어머니는 아예 정신줄을 놓아 버렸다. 초점 잃은 눈은 천정만 멍하니 쳐다본다. 넋이 나가버린 어머니에 자식은 오열한다.

 지난 7일 미국 CNN 방송에서 내보낸 2분짜리 동영상이다. 120만 명이 넘는 누리꾼들이 프델리의 가슴아픈 사모곡 영상을 봤고 1천여명이 넘는 이들이 댓글을 달았을 정도로 지금 미국인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이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보통의 마음인가 싶다. 나 역시 1주일에 두어번 요양원을 찾는다. 어머니 소리만 들어도 가슴속에 응어리가 되어 묻힌 어머니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남남같은 아들이었다. 나의 성긴 언어들은 또 어찌했을까 “별일 없으시지요” 단 일곱마디면 되는 말조차 자주 올리지 못했었다.

 비단 이뿐인가 어머니가 말씀을 하시는데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건성건성 귓전으로 흘려보냈다. 더더구나 어머니와 단둘이 영화 한 편 봤으면 하는 생각은 아예 해보지도 않았다. 모든 것이 명치끝이 무겁거나 손톱밑의 가시처럼 달막거리는 응어리들이다.

 단 한번도 살가운 대화를 해보지 못한 후회와 회한이 덩어리가 됐다. 이제와서 어찌 해야하는가 불효자가 제일 슬프게 운다는데 나 또한 제일 슬프게 울 자식인성 싶다.

 나 어릴적 복사꽃같이 어여쁘던 내 어머니가 초라한 모습으로 썰렁한 침대에 누워 계신다.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바로 옆이 보호자 휴게실이다. 그곳은 늘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사람들의 표정도 대부분 어둡다. 어떤 이는 넋을 놓고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어떤 이는 고개를 무릎사이에 파묻고 미동도 하지 않는다. 침묵을 깨는 것은 문을 여닫는 소리뿐이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나와같이 어머니의 기억들을 끌어올릴 것이다.

 최근 어머니에 대한 책이 쏟아지고 있다. 세상 살이가 각박해갈수록 어머니의 목소리가 듣고 싶기 때문일것이다.

 선풍기 옆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낡은 공책을 열어보니 조그마한 동그라미가 줄을 따라 끝없이 이어져 있더란다. 이게 뭐냐고 묻자 수줍게 웃으시며 하시는 말씀이 내가 일한 일수라고 했단다. 글을 몰라 자기만 알아볼 수 있도록 동그라미로 표시를 했다는 말씀에 왠지 슬퍼서 눈물을 흘렸단다.

 이세상 모든 어머니들은 배운 사람이든 못배운 사람이든 또는 돈이 있든 없든 자식들을 위해 노랑 빨강 초록 등 갖가지 색깔로 동그라미를 그린다. 학교에 간 아이들이 밤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는다. 초조하고 불안하다. 밖에 나가 서성거린다. 어머니들이 그리는 동그라미다. 가슴을 졸이며 아픈 아이를 돌보느라 뜬눈으로 밤을 지샌다. 자식이 시험을 보러갔다.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 앉았다 섰다 하루종일 가슴을 졸인다. 어머니들이 그리는 동그라미는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우리 시대의 어머니들은 모두가 그랬다. 세상 모든 어머니라는 이름이 다시 한번 존경스럽다. 나는 내 누이를 통해 또 다른 어머니를 새삼 만난다. 어머니는 누이와 백화점도 시장도 꽃구경도 가끔은 영화도 같이 봤을 것이다.

 누이의 손맛은 어느틈엔가 엄마의 손맛을 닮아버렸다고 했다. 이 겨울 어머니 향과 꼭닮은 장미꽃이 더 보고싶다며 되새김질한 어머니와 함께한 세월에 눈물을 감춘다. 누이는 서울에서 다음주에도 또 다음주에도 올 것이다. 어머니 볼에 자기볼을 비비며 눈물을 삼킨다. 그리고 다독이며 또 눈물을 삼킬 것이다. 이심전심이라고 했다. 뉘라할 것 없이 어머니는 회한의 눈물이 된다.

 병원에서 나를 찾는다. 순간 감전된 것처럼 머리카락이 쭈뼛해진다. 모든 감각이 화들짝 놀란다. 크게 놀랄일이 아니어서 가슴을 쓸어내린다. 아직도 나늘 찾는 것은 어머니 뿐인것을 이 나이에 새삼 깨닫는다.

 나를 찾는 사람이 분명 있다는 것은 정말 축복이다. 어머니. 어머니라고 이런 마음으로 가만히 부르고 싶은 어머니다. 나를 오래도록 부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김승곤 본사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