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은 전북도민에게 희망고문이었다."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던진 이 한마디는 전북의 지난 30여 년을 관통하는 문장이었다. 뼈아프지만,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이 말은 비판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동안 외면받아온 현실에 대한 정직한 인정이었고, 이제는 그 희망고문을 반드시 끝내야 한다는 국가적 선언으로 읽혀진다.
새만금은 지난 30년간 모든 정부의 약속이었고, 희망이었으며, 동시에 끝없이 미뤄지고 지연된 시간 그 자체였다. 새만금 개발은 1998년이면 외곽 방조제 공사가 끝나고, 2004년이면 내부 개발이 완료될 예정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본계획은 수정되었고, 돈은 투자되지 않고 가다 서기를 반복하며 사업의 이름과 방향은 여러차례 바뀌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완성을 말하기 어렵다.
이쯤 되면 전북도민은 묻지 않을 수 없다. 새만금이 수도권이나 다른 지역에 있었어도 이랬을까.
전북도민이 요구한 것은 거창함이 아니었다
전북도민은 거창한 청사진을 요구하지 않았다. 국가가 시작한 국책사업을 국가답게, 다른 국책사업들과 마찬가지로 정상적으로 추진해 달라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새만금 개발을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 수 있으리라는 믿음, 그 굳센 믿음 하나로 30년을 넘게 기다려왔다.
그러나 그 기다림은 너무 길었다. 바다를 잃고 삶의 터전을 내주었던 군산과 부안의 어민들, 그들의 눈물 위에 조성된 땅이 바로 새만금이다. 그 위에 세월이 쌓이면서 전북도민의 한숨과 분노, 그리고 체념이 뒤섞였다. 스스로를 향해 '희망고문'이라는 자조적인 말을 내뱉게 된 이유다.
새만금이 죄가 없듯, 전북도민도 죄가 없다. 다만 국가가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희망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 내부 십자도로가 완성되었고, 새만금과 전주를 잇는 고속도로도 오랜 기다림끝에 개통되었다.
내년이면 새만금 신항만이 문을 연다. 내부 용지 매립은 아직 절반에 이르지 못했지만, 기업들의 투자 문의는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스마트 수변도시 분양도 시작됐다.
정부가 마음먹고 속도를 낸다면, 새만금은 더 이상 30년 뒤의 이야기가 아니다. 빠르면 5년, 늦어도 10년 안에 가시적인 성과가 가능하다. 문제는 새만금 개발에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하겠다는 의지였고, 지금 필요한 것도 그 의지다.
지금 새만금에 가장 필요한 것은 단 하나, '속도'다. 그동안 새만금 개발을 가로막아 온 것은 구조적인 제약이었다. 민간투자에 과도하게 의존한 개발 방식, 반복되는 예비타당성조사, 광역 기반시설에 대한 국비 지원의 한계, 매립을 둘러싼 절차적 불확실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사업을 지연시켜 왔다.
특히 선(先)매립과 선(先)기반시설 구축 없이 민간투자를 유도하는 구조는 현실성이 떨어진다. 기업은 기반이 갖춰진 곳으로 간다. 아무것도 없는 땅에 먼저 투자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민간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무책임한 방식일 뿐이다. 이 악순환을 끊지 않는 한, 새만금은 계속해서 '계획 중인 미래'로만 남게 된다.
이제는 전환이 필요하다.
김관영 전북특별자치도지사는 지난 4년간 도정을 책임지며 새만금 개발과 관련하여 심사숙고해서 연구한 결과 새만금 전역을 규제 완화형 메가 샌드박스로 특구화하고, 투자·입지·인프라·재정을 결합한 국가 차원의 정책 패키지로 실질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타당한 제안이다.
민간이 먼저 뛰어들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지고 매립과 광역 기반시설을 선제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예비타당성조사 역시 '새만금 조기완성'이라는 국정과제를 저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합리적으로 적용하거나 과감히 면제할 필요가 있다.
국가차원에서 RE100 산업단지를 신속히 지정하고 도로, 전력, 용수, 폐수처리 같은 기반시설은 지방의 부담이 아니라 국가 재정으로 책임지고 개발해야만 한다.
국책사업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국가의 책임이 반드시 필요하다.
새만금은 전북만의 것이 아니다
새만금의 성공은 전북만의 성공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성공이다. 서울 면적의 3분의 2에 달하는 광활한 부지, 국토가 좁은 대한민국에서 다시는 얻기 어려운 공간이다.
이곳은 신재생에너지 기반의 RE100 산업, 인공지능과 첨단 제조업, 이차전지와 미래 모빌리티, 글로벌 물류와 같은 현대의 신산업을 한 공간에서 실험하고 구현할 수 있는 국가 전략의 테스트베드다.
새만금은 지역개발 사업이 아니라 국가 생존 전략의 일부다. 에너지 전환과 산업 대전환의 시대에, 이 땅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국가적 손실이다. 새만금은 전북도민만의 희망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가 되어야 한다.
더 이상 가능성이라는 말로 시간을 흘려보낼 수는 없다.
이제는 실행할 시간이다
30년이라는 시간은 너무 길었다. 한 세대가 지나갔다. 새만금 개발이 시작될 때 청년이었던 이들은 이제 중년을 넘어 노년으로 접어들고 있다. 그들의 자녀 세대가 또다시 '언젠가는'이라는 말을 들으며 살아가게 할 수는 없다.
이제 필요한 것은 국가적 결단과 실행력이다. 할 수 있는 것부터, 정해진 기한 안에, 책임 주체를 명확히 하여 추진해야 한다. 새만금이 논쟁과 계획 속에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국가 전략이 현장에서 완성되는 공간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희망고문'이라는 말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새만금은 희망이 실현되는 곳이 되어야 한다. 전북도민이 30년을 기다린 그 희망이, 대한민국의 미래가 되는 순간을 우리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새만금 개발과 관련해서 우리에게 남은 것은 희망을 미루는 시간이 아니라, 이제는 반드시 희망을 실현해야 할 시간이다.
그간 30 년이 넘도록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미완이었던 새만금 개발을 완성하는데 이재명 국민주권정부가 있었다는 것이 역사에 길이 남도록 기억되기를 전북도민은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이만호 / 본보 정치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