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이재명 대통령은 국회 본회의장을 찾아 2026년 예산안 처리를 조속히 해줄 것을 당부하며 의원들에게 깊이 머리를 숙였다.
과거 정부가 국회와의 불협화음 속에서 소통의 문을 닫았던 것과 달리, 이 대통령은 국회를 찾아 "초당적 협력"을 간곡히 요청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절박함과 동시에 진정성이 배어 있었다.
이는 위기의 시대에 정파를 초월한 협치만이 유일한 해답임을 온몸으로 보여준 리더십의 표상이다.
대통령이 이처럼 자세를 낮춘 이유는 명확하다. 우리는 지금 전례 없는 역사적 대전환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미국 중심의 국제 무역 질서가 재편되고, 모든 나라가 자국 위주의 보호무역 정책을 펼치고 있으며, 인공지능이 모든 산업의 판도를 뒤흔드는 이 순간, 한 발짝 늦으면 영원히 뒤처지는 것이 오늘의 국가 현실이다.
대통령의 경고는 섬뜩할 만큼 정확했다. "산업화 시대에 하루 늦으면 한 달이 뒤처지고, 정보화 시대에 하루 늦으면 1년이 뒤처졌다면, AI 시대에는 하루가 늦으면 한 세대가 뒤처진다." 고 말했다.
2026년 예산안은 바로 이러한 위기의식을 담은 전략적 선택의 결과물이다. 정부는 이를 "인공지능 시대를 여는 대한민국의 첫 번째 예산"이라고 규정했다.
정부는 이번 예산 편성에서 역대 최대 규모인 27조 원의 지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고 한다. 저성과, 저효율 사업을 과감히 걷어내고, 그 재원을 미래 투자로 돌렸다.
그 결과 인공지능 3대 강국 도약을 위한 예산은 올해 대비 3배 이상 증액된 10조 1천억 원으로 편성되었다고 한다. 첨단 전략 산업 R&D 투자 역시 35조 3천억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고 한다.
박정희 정부가 고속도로를 깔고, 김대중 정부가 초고속 인터넷망을 구축했듯이, 이제 이재명 정부에서는 AI 인프라를 구축할 때다. 2026년 예산안은 바로 그 첫 삽을 뜨는 역사적 문서인 셈이다.
이 대통령의 국회 방문에서 가장 주목할 대목은 그의 태도였다. 그는 예산안 통과를 일방적으로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국회의 제안을 경청하고, 좋은 대안은 언제든 수용하겠다"고 약속했다. 행정부 수반으로서 당당히 정책을 설명하되, 입법부의 권한과 역할을 전적으로 존중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정부와 국회가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 함께 일하는 협력의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그의 발언은 정치의 본질을 상기시킨다.
정치는 싸움이 아니라 문제 해결의 과정이어야 한다. 여당과 야당의 입장은 서로 다를 수 있지만, 국민과 나라를 위하는 진심만큼은 다르지 않다는 믿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연설을 마무리하며 대통령은 한국 국민의 저력에 대한 믿음을 피력했다. 전쟁의 폐허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고, IMF 위기 때는 금모으기 운동으로 국난을 극복했던 그 위대한 DNA가 우리 안에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한국은 위기 때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위대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자원도, 자본도 없던 나라가 반도체 강국이 되고, 문화 강국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집단지성의 역량,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위대한 힘이다.
이제 우리 앞에 또 하나의 고비가 놓여 있다. AI 대전환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우리는 과감한 선택을 해야 한다.
2026년 예산안이 반드시 법정 처리 기한 내에 처리되어야 한다. 이 대통령은 연설에서 시간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AI 시대에 하루의 지체는 곧 한 세대의 격차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예산이 늦게 확정되면 그만큼 집행이 늦어지고, 늦어진 만큼 우리의 경쟁력은 낮아지게 된다.
물론 국회는 예산안을 치밀하게 심사해야 한다. 그것이 입법부의 책무다. 하지만 심사가 지연의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여야가 각자의 입장을 고집하며 예산안을 볼모로 삼는 구태는 이제 끝나야 한다. 국민은 정쟁이 아니라 성과를 원한다.
이제 공이 국회로 넘어온 만큼 국회가 화답할 차례다. 여야가 초당적으로 협력하여 예산안을 신속히 처리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국민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 될 것이다.
2026년 예산안은 단순히 1년치 지출 계획이 아니라, 대한민국 백년의 미래를 설계하는 청사진이다. 이 역사적 기회를 정쟁에 발이 묶여 놓쳐서는 절대 안 된다.
이만호 / 본보 정치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