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신라 천 년의 수도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대한민국의 외교력과 국력을 전 세계에 널리 보여준 역사적 순간이었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과 국제적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한국은 이제 당당한 모습으로 국제질서의 균형을 이끌어가는 중심축으로 우뚝 섰다.
이번 회의의 성공적 개최는 단순한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넘어, 한국이 세계 무대에서 당당히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선보인 뜻깊은 자리였다.
APEC은 21개 회원국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의 지역경제협의체다. 세계 인구의 절반과 교역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이 협력체에서 한국은 경제력과 기술력, 문화력을 두루 갖춘 핵심국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번 회의에서 우여곡절 끝에 ‘경주 선언’을 채택한 점이 돋보인다. 그리고 올해 APEC의 3대 중점 과제인 ‘연결, 혁신, 번영’이라는 의제를 내세워 무역, 투자, 디지털 전환과 탄소중립, 포용적 성장 등 글로벌 현안에 대한 구체적 해법을 제시한 점도 무엇보다 의미가 깊다.
한국이 이제 단순한 회의 주최를 넘어, 국제사회의 의제를 선도하는 ‘의제 설정국(agenda setter)’으로 도약했다는 점이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이번 APEC의 성공은 한국의 ‘조용한 힘(soft power)’의 위력을 보여주었다. 경주의 시민들은 질서정연한 교통과 자발적 봉사로 한 치의 착오도 없이 정상들을 맞이했고, 첨단 인프라와 친환경 행사 운영은 전 세계에 한국이 기술력과 환경의 조화를 이룬 선진국임을 실감하게 했다.
행사장 주변에 울려 퍼진 한류 음악과 K-컬쳐 전시는 문화가 경제를, 예술이 외교를 움직이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전 세계에 널리 보여주었다. 이제 한국의 브랜드는 단순한 경제성장에서 품격 있는 선진국으로 넓게 확장되었다고 본다.
회담장에서는 실제적인 외교 성과도 눈부시게 나타났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세 협상에서 자동차 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추고, 일시 현금으로 투자해달라는 일방적 요구를 10년에 걸쳐 200만 달러씩 분납 투자하며 1,500만 달러를 마스가 프로젝트에 투자하도록 협의하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한국경제의 불확실성을 완화하고 실질적 이익을 확보한 협상으로 평가된다.
또한 중국 시진핑 주석과의 회담에서는 북한 비핵화 협력은 얻어내지 못했지만, 사드(THAAD) 배치 이후 경색된 양국의 교역 관계를 완화하고 경제교류를 더욱 확대하는 성과를 얻었다.
일본 다카이치 총리와도 한미일 공조를 더욱 공고히 하고 무역장벽을 낮추기로 합의했다.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는 냉엄한 국제관계 속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실리와 균형을 바탕으로 한국의 위상을 한 단계 높이고 경제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번 회의의 성공적 개최는 국민의 성숙한 시민의식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점에서 더욱 값지다. 지난 수십 년간 산업화와 정보화, 민주화를 일군 국민의 저력이 행사장 곳곳에 배어 있어 세계인을 감탄케 했다.
한국의 국력은 단순한 경제지표나 군사력으로 측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국민 의식의 수준과 국제사회의 신뢰, 그리고 미래를 향한 통찰력에서 비롯된다. 경주의 하늘과 바다 위로 펼쳐진 불꽃은 한국의 가능성을 환히 비추었고, 세계는 한국을 책임 있는 선진국으로 주목하게 되었다.
이번 성공은 한순간의 영광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국가 브랜드로 이어져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쌓아 올린 성과는 케이팝, K-뷰티, K-컬쳐 등 한국문화와 예술, 경제력에 대한 자부심으로 더욱 확장되어야 한다. 과거의 영광에 머물지 않고, 미래를 향해 당당히 나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APEC 경주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는 한국인의 저력과 창의성, 성숙함을 세계에 보여준 멋진 모습이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이 성취를 단순한 기억으로 두지 않고, 앞으로의 대한민국을 더욱 빛나게 하는 밑거름으로 삼는 것이다. 한국은 세계 속에서 당당히 서 있으며, 인류 공동 번영의 길을 함께 설계하는 책임 있는 선진국으로 나아가야 한다.
경주의 밤하늘 위로 다시 한번 밝게 빛날 불꽃처럼, 대한민국의 미래도 환히 밝혀야 한다. 이 빛을 지속 가능한 성장과 문화적 자존감으로 이어갈 때, 비로소 한국이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를 아우르며 선도하는 나라로 더욱 발전하며 나아가게 될 것이다.
이만호 / 본보 정치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