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직장에 다니는 박과 강은 뜻밖에도 중고차 영업소의 작은 경차 앞에서 마주쳤다. 느닷없이 마주하게 된 두 사람의 시선은 목욕탕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을 서로에게 보이는 것만큼이나 어색하고 얼굴 화끈거리는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얼른 표정을 바꾸고 어색한 웃음으로 서로를 보며 아는 체했다. 어쨌든 둘은 직장동료니까.

사내에서 두 사람은 대놓고 서로에게 싫은 감정을 들어내지는 않으면서도 표시나지 않게 은근히 사시(邪視)를 뜨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박과 강은 교통수단에 대해 대척점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박은 이동수단으로써의 합리성과 실용성을 중시하며, 도보와 버스, 자전거를 애용했다. 반면 누구나 그렇듯 강은 승용차를 이용했다. 강은 차를 이동수단 이상의 상징으로 여겼다. 단순한 편리함을 넘어, 자신의 존재와 사회적 위치를 드러내는 도구로써 자동차를 사랑했다. 

문제는 강이 자신의 살림살이 수준보다 한참 더 상급의 승용차를 보유하고 있다는데 있다. 박은 당연히 그 허세가 못마땅했다. 강 또한 박이 대중교통과 도보를 고집하는 딸깍발이 같은 완고함과 시대에 뒤떨어지는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박은 시내버스 안에서 종종 승용차가 빽빽하게 잇대어 서 있는 도로를 보며 속이 답답해지곤 했다. 도로를 점령한 ‘나홀로 운전’ 차량들 때문이다. 

사람 신체보다 몇십 배는 더 부피를 자랑하는 승용차가 느릿느릿 이동하는 모습을 보며, 무슨 그리 존귀한 일들을 위해 금속과 플라스틱으로 합체된 기계들을 끌고 나와 좁디좁은 도로를 점령하고 있는지 싶은 것이다. 

버스와 자전거, 그리고 자신의 두 발이면 충분히 닿을 거리를 굳이 부피가 사람보다 훨씬 거대한 승용차를 이용하여 이동해야만 하는 것인가? 때로는 급한 용무나 무거운 짐을 옮겨야 하는 상황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단순히 이동 목적만으로 거대한 기계들을 끌고 다니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방만한 소비이며 환경오염인가. 필요 이상의 자원 낭비, 허영심이 담긴 과시, 도로 위에 넘실거리는 자기중심적 행동들이 박의 미간을 찌푸리게 만드는 것이다. 

강에게 승용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다.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는 상징이며, 타인의 시선을 즐기는 장치다. 고급차의 문을 열고 차에 오를 때 느껴지는 타인들의 시선과 드라이브할 때 나르시스에 빠져 느끼는 일종의 우월감 같은 심리적 행복을 버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서도 강은 무심코, 자신보다 낮은 급의 승용차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아래로 보는 시선까지 가지게 되는 것에 적잖이 당황한다.

고급차의 행복감은 결코 공짜로 주어지지 않았다. 마냥 강의 마음을 행복의 열기구에 타고 있게만 하지는 않는다. 차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할부금, 세금, 연료비, 보험료, 수리비 등 끊임없는 비용 부담이 뒤따른다. 

강은 우쭐함과 부담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면서도, 차를 출발시킬 때마다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자신을 보며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박 또한 도보나 대중교통 이용이 마냥 웃음꽃을 피우게만 하는 것은 아니다. 시내버스를 이용할 때마다 가끔 밀려두는 짜증을 어쩔 수 없다. 

정시보다 먼저 출발해버렸거나 늦게 도착하는 배차시간, 운전기사 마음대로 틀어대는 시끄러운 방송, 난폭 운전 등 소소한 불편함이 박의 이맛살을 왕창 구기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은근히 경차를 하나 소유하고 싶다는 욕구가 고개를 들이미는 것을 박도 막을 수 없었다. 

한 모델의 중형 고급차가 가져다주는 만족감을 강은 오래 만끽하지 못한다. 매번 그랬다. 좋은 모델의 중형 고급차를 타고 있다는 생각은 잠시다. 

눈을 들어 도로를 살피면 곧 강 자신이 타고 있던 차보다 훨씬 더 급이 높은 차들이 강의 차를 앞질러 가는 것이다. 야, 저 차 괜찮은데! 하는 마음이 강의 심중에 파고들면 당장 자신이 타고 있는 차가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것이다. 도돌이표처럼 차를 바꿀 때마다 강에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그동안 몇 대를 그렇게 체인지 했던가.  

차를 교체할 때마다 할부금은 더 늘어만 갔다. 언제까지 할부금을 감당할 것인가. 이제 서서히 지쳐간다. 남들 앞에서 우쭐해 하는 비용치고는 너무 과했다.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지면서 멍청한 짓을 반복하고 있다는 자괴감이 드는 것이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차는 이동수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사람들의 옷차림과 별반 다르지 않다. 너무 화려한 옷보다는 검소하면서도 단정한 옷차림이 호감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과감하게 결정했다. 고급 중형차를 버리고 소형차로 갈아타기로. 

어색한 표정과 몸짓으로 소형차를 둘러보면서 박과 강은 누가 먼저 말을 꺼냈는지 모르지만 그동안 이동수단 때문에 겪었던 불편함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박은 강이 중형차를 버리고 소형차를 선택하는 것에 대해, 강의 눈앞에 엄지를 세우고 웃으며 탁월한 선택을 했다고 추켜세웠다. 그동안 얄미운 시선으로 강을 봤던 게 슬쩍 미안해졌다. 

박과 강은 본격적으로 구입할 소형차를 품평하며 살펴보기 시작했다. 경쟁자 같던 두 사람은 작은 차 앞에서 묘한 공감대를 만들었다. 결국 이동수단은 허세도, 완고함도 아닌, 자신에게 맞는 균형점을 찾는 문제였다. 그렇게 경차 앞에 선 두 남자의 거리는 조금 더 가까워졌다.

오상근 / 본보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