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여러분께 저같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심려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가 지난 6일 오전 자신과 관련된 여러 의혹을 수사 중인 특별검사팀에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으러 들어가기 전 특검팀 청사 2층에 마련된 취재진 포토라인에서 한 말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면 일반 국민들은 뭐가 되겠는가. 이 말은 단순한 겸양의 표현일까, 아니면 자기 역할에 대한 면피인가? 대통령 배우자로서의 존재감과 정치적 영향력을 둘러싼 논란 속에서, 이 짧은 한마디는 많은 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사전에 준비한 사과 멘트에 ‘변론 전략’과 ‘가시’가 들어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자신은 아무런 공적 권한이 없기에 공천 등에 개입할 수 없고, 일부 관여했더라도 처벌할 수 없다는 입장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또 권한 없는 전직 대통령 부인을 겨냥한 대대적 수사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며, 극우 지지층 정서를 건드리는 계산된 표현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김건희 씨는 역대 대통령 부부 중에서도 이례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아온 인물이다. 과거 허위 이력 논란,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연루 의혹, 비선 라인과의 관계까지… 정치권과 언론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예의주시해왔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했으니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20대 대선 직전 공개된 김건희 씨의 ‘7시간 녹취록’을 보면 “내가 정권 잡으면 무사하지 못할 것”과 같은 문제의 발언이 곳곳에 들어 있다. 김 씨는 2022년 재보궐선거와 작년 국회의원 선거 등에서 당시 여당인 국민의힘 공천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한 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의혹, 2022년 4~8월 건진법사 전성배 씨를 통해 통일교 측으로부터 고가의 명품을 받고 캄보디아 공적개발원조 등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 의혹도 있다. 대선 직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이 불거지자 2021년 12월 기자회견에서 “과거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국민 눈높이에 어긋나지 않도록 조심하겠다. 남편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라고 했다. 그럼에도 김 씨는 윤 전 대통령 재임 중 부적절한 처신으로 의혹의 중심에 놓였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했다. 

대통령의 배우자는 단지 대통령의 가족이 아니다. 헌법이나 법률에 명시된 공직자는 아니지만, 그가 갖는 위치는 본질적으로 공적이다. 외교 현장에서 국익을 대표해 외빈을 응대하고, 국민 앞에 서서 대통령을 대신해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때로는 조용한 영향력을 통해 대통령의 의사 결정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대통령 배우자는 단순한 사인(私人)이 아니다. 정치적 동반자이자 조언자이며, 상징적 얼굴이다. 

국민은 대통령을 선출할 때, 그 배우자의 품격과 태도까지 함께 본다. 그것은 단지 이미지 때문이 아니다. 대통령이란 자리가 갖는 엄청난 권한과 고립감 속에서 가장 가까운 참모이자 조언자가 누구인지 국민은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므로 대통령 부인은 대통령의 의중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점은 부인일 수 없다. 대통령과 단둘이 있을 때는 무슨 말인들 못 하겠는가. 어떤 비밀 스런 말도 오갈 수 있다. 이를테면 국정 운영 같은 문제에도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때 김건희 씨는 일반 국민들이 가질 수 없는 엄청난 힘을 지녔었다. 자신이 말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말과는 정반대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공적 공간에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언론의 취재 대상이 되며, 야권의 공식 비판 대상이 되는 일은 거의 없다. 

정의는 사회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질서이며 그 기초위에 세워진다. 하지만 정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있다. 바로 죄지은 자는 반드시 그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는 단순한 감정적 보복이 아니라 법치주의가 작동하는 사회에서 반드시 지켜져야 할 응보(應報)의 정의다. 

신영규 / 전북수필과비평작가회의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