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부안의 작은 섬에서 피어난 한 편의 무용극이 독일 베를린의 심장을 두드렸다. 그것도 세계 음악인들이 선망하는 무대, 슈타츠오퍼 국립오페라극장에서였다. 이는 단순한 공연을 넘어, 전북의 문화와 한국적인 정서를 세계에 전한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지난 7월 27일,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 무용단이 창작무용극 ‘고섬섬’을 들고 베를린에 섰다. 이 공연은 단순한 문화행사가 아니었다. 슈타츠오퍼는 유럽 클래식의 본산이자 세계적인 공연장이며, 음악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무대다.
그곳에서 한국의, 그것도 전북의 지역설화를 바탕으로 한 창작무용극이 관객의 기립박수를 이끌어낸 일은 그 자체로 하나의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고섬섬’은 부안 위도의 옛 지명에서 출발한다. 고슴도치처럼 나무가 우거져 ‘고섬’이라 불렸고, 이곳은 고려와 중국을 잇는 해상 교역로이자 장보고의 무역길이 지나던 역사의 섬이다. 과거 수천 척의 어선이 드나들던 조기의 황금어장이었고, 이로 인해 주민들은 바다의 평온과 만선을 기원하며 ‘위도띠뱃놀이’라 불리는 대리원당제를 이어왔다. 현재는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매년 음력 1월에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무용극 ‘고섬섬’은 이 풍부한 역사와 설화를 토대로 창작되었다. 칠산바다와 바닷길, 원당 마누라, 그리고 풍어제를 중심으로 바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춤으로 풀어냈다.
무대는 섬의 형상을 닮아 섬과 바다의 경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했고, 위도의 풍경과 바람이 안무와 음악에 녹아들었다. 신화와 현실, 삶과 자연이 맞닿은 무대 위에서 정한(情恨)은 아름다운 몸짓으로 되살아났다.
이 작품은 2023년 12월, 국내 초연에서 이미 “동양적 서사와 감성이 조화를 이룬 수작”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후 2024년 10월 전주에서 열린 세계한인비즈니스대회에서도 초청되어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 무대에 올라 큰 호응을 얻었다.
무대마다 감동은 확산되었고, 마침내 유럽의 관객들과 만나는 결실로 이어진 것이다.
이번 유럽 공연에는 김관영 전북특별자치도지사, 권익현 부안군수, 김정기 전북특별자치도의원을 비롯한 지역 인사들이 함께했다.
공연은 단지 문화 교류의 차원을 넘어, 전북의 미래를 세계에 알리는 외교적 메시지로 기능했다. 전북도는 현재 전주 하계올림픽 유치를 목표로 국제적 행보를 강화 중이다.
이 공연은 전북의 문화 역량과 브랜드를 세계 무대에 각인시키는 상징적 계기가 되었다.
특히 슈타츠오퍼 국립오페라극장에서 지방 예술단체가 만든 창작무용극이 정식으로 공연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는 작품의 예술성과 기획력이 세계 수준임을 입증하는 것이며, 동시에 지역문화가 가진 힘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공연을 관람한 김정기 도의원은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이 실감된다”며 여운이 공연이 끝난 지금까지 남아 있다“며 “전북의 설화가 베를린 무대에서 예술로 꽃피는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렇다면 유럽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무엇일까? 바로 이야기의 힘이다. 익숙하지 않지만 묵직한 울림을 지닌 전북의 지역 서사, 그리고 그 이야기를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무용과 음악, 무대 미장센(영화나 연극에서 하나의 장면을 구성하는 시각적 요소의 조화)으로 풀어낸 완성도 높은 연출. 이 모든 요소들이 언어의 장벽을 넘어 감동을 전했다.
고섬섬은 단지 전북을 알리는 작품이 아니다. K-컬처의 외연을 넓히고, 지역문화의 가능성을 세계에 증명한 살아있는 증거다. 대중문화에 머물렀던 K-컬처가 이제는 무용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확장되고 있다.
세계는 지금 전북을 주목하고 있다. 고섬섬은 그 시작일 뿐이다. 전북의 문화예술이 앞으로 더 많은 세계 무대에 올라 한국의 깊고 넓은 문화 자산을 널리 알려지기를 기대해 본다.
이만호 / 본보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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