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한 해가 빠지려고 한다. 세밑이 다가옴에 따라 거리엔 자선남비가 등장하고 크리스마스 캐롤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이곳저곳에서 각양각색의 송년모임으로 시끌벅적하다. 이러한 자리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술이다. 부어라 마셔라, 지는 해의 아쉬움을 달래며 세상은 온통 권주가로 가득하다. 하지만 술은 득과 실의 양면성이 있어 적당히 마시면 약이 되고 많이 마시면 악마의 재앙으로까지 변할 수도 있으니 그야말로 두 얼굴의 야누스 격이다.
 사람들은 왜, 술을 마실까? 마시고 싶어서 마신다. 술이 좋아서 마신다. 기뻐서 한잔, 슬퍼서 한잔, 외로워서 한잔, 속상해서 한잔, 반가운 사람 만나서 한잔, 비오는 날이라고 한잔, 눈 오는 날이라고 한잔, 이 핑계 저 핑계로 술을 마신다. 이는 애주가들의 변명이다.  
 술은 신비한 마력을 지녔다. 술엔 알코올 성분이 있어 많이 마시면 취하는 음료의 총칭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술은 취하기 위해 마신다.’고 당당히 말한다. 기쁜 날 마시면 좋아서 취하고 싶고, 슬픈 날 마시면 슬퍼서 취하고 싶다. 이게 우리네 정서다.
 그런데 술을 마시면 주정을 부리는 사람이 있다. 괜히 남과 시비하려고 하고 심하면 고성과 폭언과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성격 탓도 있지만 습관성이다. 첨부터 술을 잘못 배워서 그렇다. 반면, 평소 말수가 적은 사람이 술만 만시면 말이 많아지고 애인이나 부인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반복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다 기분이 내키면 용돈을 아낌없이 준다. 이런 사람은 몸에 술이 들어가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다.
 술은 마음으로 마시고, 생각으로 마시고 몸으로 마신다. 그래서 마음이 취하고, 생각이 취하고, 결국 몸이 취해서 세상이 흔들린다. 한 잔의 술이 있어 마음도, 생각도, 몸도, 그리고 세상도 내려놓을 수 있다. 맞는 말이다. 이 좋은 순간도, 이 아름다운 순간도, 이 즐거운 시간도 이 고통스러운 시간도 술이 있어 지나가고 견딘다.  
 그러나 필자는 술은 육체와 영혼까지 죽이는 독약라고 생각한다. 술 때문에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도처에 널려있다. 중국의 천재시인 이태백은 술 때문에 패가망신 했고, 유량은 술과 방탕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비참하게 객사했다. 중국 국가원수인 태위교위도 만취해 죽었다. 백제의 장군 혼건은 술에 취해 있다 고구려에 패했고, 신라 헌강왕은 적병과 싸우던 중 주연을 베풀던 포석정에게 패망했다. 임진왜란 때 일본의 장수도 진주 촉석루에서 주색에 빠져있다 논개에 의해 수장되지 않았던가?
 술은 현명한 사람을 기만하고, 점잖은 사람을 떠들게 만들고, 심각한 사람을 웃게 만드는 재치가 있다. 술을 적당히 마시면 정신이 흥분되어 언어, 동작이 활발해지고, 기분이 좋아져 웃기를 잘하고 말이 많아진다. 이러한 현상은 평상시 침울하고 소심한 사람에게 더 뚜렷이 나타난다. 그리고 치밀한 사고력, 이해력, 주의력, 판단력 등이 얼마간 저하되고, 평안하고 느긋한 기분이 된다.  
 한국인과 술을 떼어 설명할 수 있을까? 술에 얽힌 에피소드가 없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한 잔은 건강을 위하여 마신다고 하나 얼큰하면 쾌락을 위해 마시게 되고, 만취가 되면 광기를 부리게 된다. 그게 바로 술이라는 것인데, 또 목구멍에 술술 잘 넘어가니 술이라고도 한다나?
 술은 어떤 걸 마시나보다 어떻게 마시나가 더 중요하다. 요즘은 남녀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술을 즐기는 편이다. 그리고 술 종류가 하도 많다 보니 어떤 술을 선택해서 마실까, 잠시 망설어지기도 하고 뭘 마시던 얼근히 취할 기분에 즐거운 고민이 되기도 하다.
 그렇지만 술은 연애와 정치의 촉매제이자 다양한 사교생활을 위한 불가피한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예술가에겐 삶의 진부한 조건들에 대항하는 영감과 힘의 원천이 될 것이다. 그러니 아리스토파네스가 마시고 소크라테스가 마신 술을 모든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것이다.
 술! 사람을 기쁘게도, 슬프게도, 웃게도, 그리고 울게도 만드는 인류의 기호품. 처음 술을 마실 때는 양처럼 온순하고, 조금 취하면 사자처럼 흉포해지고, 아주 많이 취하면 돼지처럼 더러워지며, 너무 지나치면 마치 원숭이처럼 허둥댄다는 탈무드의 이야기가 있다. 술은 인간의 역사에서 그 문화와 시기를 막론하고 떼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이어왔다. 그래서 세상은 술맛 때문에 사는 사람들로 북적인가 보다.

 신 영 규/전북수필 주간 겸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