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잡초는 불필요한 존재로 여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잡초는 고통의 긴 겨울을 견디고 봄이 오면 땅을 헤집고 움이 올라온다. 여린 풀들을 보고 있노라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조물주는 분명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생물에게 생존권을 부여했을 것이다. 잡초(雜草) 입장에서 생각하면 민초(民草)들을 원망하면서 쉽게 뽑히지 않으려고 시위를 하고 아우성을 치는 것 같다.
 잡초도 분명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갈 권리가 있을 터인데 민초들의 필요에 따라 차별받는 처지가 억울하기도 할 것이다. 잡초의 입장에서는 생존권을 부르짖을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민주주의를 부르짖던 시절 억눌리고 짓밟히는 백성을 일컬어 ‘민초’라 했다. 탄압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더욱 인권과 자유를 부르짖는 민초의 생명력은 모질기만 했다. 질긴 잡초를 보면서 이들 역시 “우리도 민초다. 우리의 생존권을 박탈하지 마라.”고 항변하는 것 같다
 우리민족은 수없이 많은 외침을 받으며 살아왔다. 특히 일제 식민치하에서 36년간 큰 고통을 받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조국 광복을 위하여 목숨 걸고 싸운 많은 독립투사들이 있었기에 나라를 되찾을 수 있었다.
 광복이 된 뒤 우리 민초들은 해방의 기쁨을 안고 살았다. 그런데 6ㆍ25한국전쟁을 겪었다. 그 전쟁 중 희생된 민초들이 얼마이던가? 정말 민초들은 피비린내 속에서 살아왔다. 그 뒤 4ㆍ19혁명 당시 민초들의 희생이 얼마나 많았던가. 또 1961년 5ㆍ16군사쿠데타와 5ㆍ18광주민주화항쟁 등을 겪으며 31년의 군사정부동안 민초들은 숨을 죽이고 살았다.
 민초들은 민주주의를 외치다가 많은 투사들이 투옥되거나 희생되었다. 그 투사들의 희생으로 우리 민초들은 평온을 되찾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잡초 하면 평생 잊지 못할 추억거리가 있다. 6ㆍ25 3개월 뒤에 9ㆍ28수복이 되었다. 우리 집은 변산반도국립공원 내변산 깊숙한 산골 청림(靑林)마을에 있었다. 인민군이 물러간 다음날부터 낮에는 경찰이 치안을 맡았으나 밤이면 빨치산이 돌아와서 주민의 재산을 약탈해 갔다. 낮과 밤사이에 주인이 바뀌니 더 이상 고향에서 버틸 수가 없었다. 주민 500여 명이 피난길에 나섰다. 그 지역은 한국전쟁 최후의 격전지가 되어 총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4년이 지난 봄 기쁜 소식을 들었다. 지리산 빨치산은 남았지만 변산 빨치산은 완전 소탕되었으니 지역주민들은 복귀하라는 소식이었다. 그때 그 기쁨은 심 봉사가 광명을 되찾은 것이나 같았다.
 눈물 젖은 4년 동안의 피난살이를 마감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집은 황무지로 변해있었다. 집터와 논밭이 어디인지 알아보기조차 어려웠다. 그야말로 잡초세상이었다. 나무들은 지붕보다 높았고, 잡초들은 사람의 키보다도 더 컸다. 민초들은 오간데 없고, 바람소리와 풀벌레소리 등 자연의 합주(合奏)를 벗 삼아 잡초들이 멋대로 자란 것이다.
 조물주는 모든 생물에게 이름을 부여한다. 그런데 워낙 많아서 그런지 잡초 중에는 이름이 없는 무명초들이 많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름도 없이 살다 사라지는 무명초는 얼마나 서러울까?
 풀들은 때와 장소에 따라 가치가 다르다. 산과 들에 나는 풀들이 없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삭막할까. 풀들은 꽃을 피워 벌과 나비들에게 먹이를, 민초들에겐 신선한 공기와 아름다움을 선사해 준다.
 민초와 잡초도 자연의 일부다. 쓸모없다고 여기던 잡초 중에는 질병 치료 약재로 각광을 받기도 한다.
 집안에 아름다운 뜰을 갖고 사는 것은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아파트보다 단독주택을 좋아한다. 잡초를 뽑고 정원을 가꾸는 일보다 더 즐겁고 행복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고 재 흠/한국신문학인협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