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 신명나게 춤을 추고 싶은 때가 있다. 배워서도 익혀서도 아닌 자연발생적 원시의 몸짓으로 사나운 짐승이 포효하듯, 성난 파도가 울부짖듯 그리고 묵묵한 깊은 산이 침묵 속에서 수도하듯 경건한 숨결로 춤을 추어보고 싶은 때가 있다.
 유난히도 외침이 많았던 우리 민족이기에 그 한과 통곡을 통해 더 강인한 끈기와 인내의 의지로 오늘에 이른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이어온 바탕에는 언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러기에 더욱’ 내면에서 솟구치는 한바탕 신명이 있었다. 말 대신 온 몸으로 빚어내는 춤이 그 디딤돌이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아직도 환청과 환시처럼 꽹과리나 북, 장구의 장단 속에서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어대는 동네어른들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그렇게 애환을 토하고 위무 받는 춤이 있어 우리의 뿌리들은 그 어떤 삶에서도 도약을 꿈꿀 수 있었을 터이다.
 그 즈음엔 ‘회치’란 말이 있었다. 어른들의 들놀이를 경상도에선 그렇게 불렀다. 봄가을 들놀이 때면 어른들은 막걸리를 나눠 마시고 옷고름이 풀릴 정도로 신명을 내며 장구소리에 따라 덩실덩실 춤을 추어 한바탕 생활고의 애환을 풀어 내렸다. 그러나 도가 지나치면 풍속을 어지럽힌다하여 정부에서 저지하는 단속을 하여 차츰 그 풍속은 사라지고 오늘날엔 너나없이 노래방에서 스트레스 겸 신명을 푸는 풍속으로 바뀌었다. 우리네 생활 속엔 늘 삶의 윤활유인 춤이 있었다.
 그 중 우리 고유의 춤인 아리랑은 민족의 얼 자체와 같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친근히 신명 속에 어우러지게 한다. 그래서일까. 평소 나는 아리랑 춤을 쉽게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그처럼 오묘하고 배우기 힘든 춤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다.
 몇 년 전 내가 봉사하는 단체에서 매달 한 차례 노인요양병원의 환자들에게 발마사지 봉사를 하는데, 아리랑 춤을 공연하기로 했다. 평시에 손목관절이 아파 충실한 봉사를 할 수 없었기에 춤으로나마 봉사를 메워보자고 마음먹고 함께 춤을 배웠다. 그런데 몇 명이 빠져나갈 때는 그들과 함께 꽁무니를 빼고 싶었다. 가장 나이가 많아 쑥스러웠고, 생각보다 어려웠기 때문이다. 순서를 익히기조차 힘들었다. 그러나 춤을 배워가며 새삼 우리 춤의 수려한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정석의 춤이 그려내는, 우아한 자태의 아치, 손놀림과 발끝 들림 하나, 발 디딤 한 발자국, 몸을 도는 자태와 고갯짓 하나에조차도 고혹적인 리듬이 있었다. 학처럼 날아오르고 한 서려 무너지고 꽃처럼 피어나는 모습도 있었다.
 춤으로 무대에 서는 건 난생 처음이다. 실수할까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애썼으니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을 다졌다. 부채를 오므렸다가 확 펴들며 어깨와 발끝에도 신명을 실었다. 한껏 즐거움을 선사하려는 마음에 웃음을 띠며 어른들과 눈을 맞추었다. 그러자 어느 순간에 어르신들이 자리에서 일어서 춤을 추고 가락에 맞추어 손뼉을 치기 시작하였다. 함께 더불어 즐거운 공연이 되었다. 즐거움을 선사하려는 마음이 절실해서였을 것이다. 비록 춤은 서툴렀지만 조그만 봉사가 된 것이 진정 기뻤다. 아리랑은 역시 우리 민족이 가장 쉽게 어우러지는 뿌리 깊은 우리네 춤이었다.
 올해 사월은 잔인했다.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유난히 아팠다. 그 속을 예까지 걸어오면서 내내 숨이 턱턱 막힐 듯하다. 하여, 한바탕 어둔 속을 부셔내는 춤이라도 추어야 할 것 같다. 자연이 한번 씩 거친 숨결을 내뿜으며 우주의 공기를 정화하듯 우리 맘과 영혼도 그런 정화를 강렬히 필요로 할 때가 있으니 지금이 바로 그러한 때인가 한다.
 어느 시인이 읊었다.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춤을 춰라 아무도 보고 있지 않는 것처럼’ 이라고….
 온 자연이 옷을 벗고 알몸으로 침묵하는 때에 그대여, 우리 함께 춤을 추자, 날아오르자. 행복하기 위한 삶에서 생의 아름다움을 신명나게 춤추자. 우리네 뿌리 속 열정은 한바탕 춤을 추며 또 다시 우리를 치유하고 새롭게 다지며 일으켜 세울 것이다. 부옇게 갈앉은 영혼의 유리잔을 흔들어 깨끗이 눈부시게 부셔낼 날이 올 것이다.

 김 미 정/한국신문학인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