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는 언제 보아도 청청하며 생동감 넘치는 식물이다. 특히 삼복더위에 대밭에 들어가면 한기를 느낄 정도로 서늘하고 포근하다.
 내 고향은 부안 변산에서 두 번째 높다는 삼예봉 줄기에 있다. 높은 산 깊숙한 골짜기에 자리 잡은 노적마을, 나의 유년 시절 우리 동네는 약 50여세대가 살았다. 우리 마을엔 몇 집에 대나무 밭이 있었지만 우리 집의 대나무 밭이 제일 넓고 좋았다. 뒤란의 대밭에는 푸른 산이 있고 울울창창한 삼림이 펼쳐져 있어 청정감을 더해준다.
 언제나 고향에 가면 대나무에 대한 추억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무엇보다 대밭의 묘미는 죽순(竹筍)에 있다. 묵은 잎을 제치고 올라오는 어린 싹 곁에서 나의 희망도 함께 자랐다, 어른들은 그 대나무를 베어 생활도구를 만들고, 아이들은 가늘게 쪼갠 대나무살로 연을 만들어 날렸다,
 해마다 5월 중순에서 6월 중순에 걸쳐 죽순이 돋아난다. 웃자란 대나무의 줄기는 종류에 따라 크기와 모양이 다른데, 어떤 것은 높이가 1~2m에서 최고 30m정도까지 자란다. 그런데 내 유년시절 대나무밭에서 죽순이 올라올 때 동네 친구들과 말달리기 놀이를 하느라 1년 농사를 망친 적이 있었다. 그때 엄중하신 아버님 앞에 종아리를 걷어 올리고 회초리로 매를  맞았었다. 그것은 철없던 때의 행동이요 교훈이며 추억이다.
 옛날 우리 집에선 대나무밭을 모시밭, 감나무(竹ㆍ苧ㆍ?)밭과 더불어 생금(生金)밭, 또는 생재(生財)밭이라고 불렀다. 한번 심어놓으면 크게 일손들이지 않아도 철따라 봄에는 대나무, 여름에는 모시, 가을에는 감으로 상당한 수확을 올렸었다. 그때 무슨 특별한 소득 작물이 있었겠는가. 그야말로 재산목록 1, 2, 3호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요즘 사회에서 성격이 곧은 사람을 ‘대쪽’ 같다고 한다. 상황에 굴하지 않고 어떤 일이든 소신을 밝힐 줄 아는 사람의 기개를 일컫는 말이다. 그래서 자칫 교만스럽게 비칠 수도 있다.
 역사를 돌아보면 옳은 말을 하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바로 조선시대의 정암 조광조(靜庵 趙光祖)선생 같은 분은 대쪽의 표본이라 할만하다.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여 바른 정치를 외치다가 38세의 젊은 나이에 사약 받기를 주저 하지 않았던 정암 조광조. 선생이 당대에는 패했지만 역사에서는 승리한 조선 제일가는 선비였음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대나무는 쓰임새가 다양하다. 봄에는 죽순을 채취하여 밥상에 올리면 향긋하고 훌륭한 요리요, 약초로도 채취되었으며, 옛날 화학무기가 없을 땐 죽창과 죽포 등 유일한 전쟁무기가 아니던가. 종이가 개발되기 전에는 편지용 간독지로, 붓과 악기, 부채를 만드는 주재료로 쓰였다. 또 지팡이와 우산대로, 고기잡이 어구로, 상을 당했을 때는 상장(喪杖)이나 만장을 만드는데 쓰였다. 이 외에도 대의 용도는 많았다.
 대나무는 우리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조선시대 학자 윤선도(尹善道)의 ‘오우가(五友歌)’ 에는,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곧기는 뉘시기며 속은 어이 비었는가./저렇게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라는 시조는 이러한 대의 성격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요즘 고향 대밭에 제멋대로 뻗은 대나무는 그 넓은 집안 구석구석 비옥한 땅에서 잘 도자란다. 누가 공짜로라도 베어가는 이가 없다. OECD 반열에 오른 국가에서는 과학문명의 발달로 대나무의 용도는 설자리를 잃었다.
 한 세기가 지나니 대나무를 캐내고 다른 작물로 대체한 지 오래다. 그야말로 푸대접이다. 그 넓은 우리 집 대밭도 캐내야할 형편이다. 정말 한심하기 그지없다. 대나무를 팔아 학비와 생활비를 했던 때가 그리워진다.

 고 재 흠/수필가ㆍ한국신문학인협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