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오래전에 신문에서 황당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병원비를 못낸 환자의 수술 실밥을 도로 풀어버린 중국의 어떤 ‘엽기병원’의 이야기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중국 우한의 한 식당에서 일하는 쩡모(20)라는 청년이 주방에서 그릇을 씻다 손가락을 크게 다쳤다. 동료들이 그를 데리고 인근 병원으로 가서 응급 봉합수술을 받은 것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병원측이 내민 청구서에는 1830위안(약 30만원)이 적혀있었다. 쩡과 일행들이 당시 수중에 1000위안밖에 없다고 하자 병원 관계자는 “돈을 내든지, 아니면 실밥을 풀든지”라며 으름장(?)을 놨다. 당시 쩡이 일하던 식당의 사장도 없는 날이어서 돈을 융통할 곳도 없었다. 결국 병원측은 쩡을 다시 수술실로 데려가 실밥을 풀어버렸다. 그것도 마취주사도 놓지 않은 상태서…. 일행들은 다시 쩡을 데리고 인근의 다른 병원으로 가서 재봉합수술을 받아야했다. 이 사건으로 중국 여론이 거세게 들끓었었다.
 또 하나, 이것도 오래전 신문에서 읽었다. 미국 테네시 주의 한 외딴 농촌마을 이동식 주택에 불이 났다. 잠자던 주인이 일어났을 때 집 안은 이미 연기로 자욱한 상태였다. 겨우 몸을 추스르고 집을 탈출한 주인은 ‘911’에 화재신고를 했다. 신고를 받은 인근 소도시 소방대원들은 소방트럭 등 화재 진압장비를 모두 갖춘 상태로 즉각 현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출동과정에서 집주인 벨씨가 연간 75달러 (약 8만 6250원)의 소방 요금을 납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소방대원들은 차의 시동을 끄고 한가하게 도로 한편에 앉아 불구경만 했다. 불을 끄는 대신 요금을 성실히 납부한 다른 이웃집에 불이 옮아붙는지만 면밀히 관찰했다. 벨 씨는 집과 가재도구가 잿더미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이 두 사건을 놓고 볼 때 순간적으로 ‘뭐 이딴 나라, 이딴 정책이 다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돈 때문에 수술부위의 실밥을 풀 수 있으며, 불이 나서 건물이 불타고 있는데도 수수방관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제도의 차이나 문화의 차이가 있다고 해도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만약 이 같은 일이 한국에서 발생했다면 어떻겠는가. 보나마나 정권이 흔들릴 정도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을 것이다.
 전자는 모두 돈 때문에 겪어야 했던 비극이자 고통이다.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일부 가진 자와 엘리트들이 부와 명예와 권력을 독점하고 있다.
 그렇다. 지구가 평평하지 않듯이, 세상도 공평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억울함을 느낀다. 어떤 이는 공평한 세상이 오기를 막연히 꿈꾸는가 하면, 어떤 이는 공평한 세상을 만들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렇지만 세상이 반드시 불공평한 것만은 아니다. 예컨대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다. 자연은 인간에게 24시간 이상을 주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하루에 24시간을 산다. 사람에게 고루 공평하게 나누어지는 자원은 시간이 유일하다. 권력이나 돈으로도 타인의 시간을 뺏을 수 없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재원인 시간을 가지고 행복한 삶을 선택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장의 시간과 직원의 시간은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내게 주어진 새벽시간을 내가 활용할 수 있는 범위와 정도는 빌게이츠나 스티뷰 잡스의 경우와는 전혀 다르다. 더욱이 시간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지만 남이 더 잘 할 수 있거나 굳이 내가 안 해도 될 일이라면 돈을 주고 누군가에게 위임하면 된다. 돈이 많으면 시간도 많아진다. 그래서 시간도 공평하지 않다. 그러면 무엇이 공평한가? 그것은 곧 죽음이다.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놓여 있는 삶의 마지막 여정이다. 부자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권력이 있든 없든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길이고,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야 할 마지막 길이다. 이 죽음의 길을 건넘으로써 비로소 긴 인생여정의 종지부를 찍고 다시 자신의 생명을 잉태해준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그러므로 죽음이야말로 모두에게 공평한 길이다. 

 신 영 규/한국신문학인협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