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긋불긋 단풍이 물들면 그 모습이 마치 ‘여인네의 붉은 치맛자락’과 같다하여 이름 붙여진 산, 무주적상산. 한 줄기 가을비가 훑고 간 자리에는 가을빛이 더욱 깊어져 있었다. ‘어서 오르라’ 발길을 재촉하는 적상산을 바라보며 서창길(적상면 사천리)을 따라 오르다 보면 물소리, 바람소리, 바스락 거리는 낙엽소리와 더불어 뜻밖의 공간과 마주하게 된다. 차와 음악, 문화와 예술이 흐르는 곳, “서창갤러리 카페”. 자연과 건물이 어우러져 한 장의 예쁜 그림엽서가 돼 있는 풍경에 한 번, 고즈넉한 분위기에 또 한 번 마음을 사로잡힌다. ‘정작 가고자 했던 곳이 어디였는지...’ 마당 한 켠 주인장이 만들어 놓은 낙엽하트에 고스란히 마음을 빼앗기고, 두 귀를 쫑긋 세운 토끼들의 환영 인사를 받으며 발길을 멈춘다. 

카페야? 갤러리야?
빨강 난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훈훈한 까페로 들어서자 주인장 김동렬(44세)와 이정숙 씨(43세)가 환한 웃음으로 반갑게 맞는다. 테이블 네 개가 전부인 공간이지만 금방 내린 커피부터 산행으로 출출해진 등산객들의 허기를 채워줄 빵과 간식들까지 메뉴도 다양하다. 그래도 이곳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은 자리에 앉아 숨을 고르며 만나는 소품들. 캘리 작품에 도자기와 목공예 작품들, 수공예 액세서리까지 아기자기하게 채워진 소품들을 구경하다보면 전시장 한 가운데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이 인다. 그도 그럴 것이 김 씨와 이 씨는 모두 무주에서 알아주는 부부 예술인이다. “카페는 무주군 관내 예술인들의 갤러리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무주에 귀촌해 사시면서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그 분들이 뜻을 모아 작년에 문화예술인 협동조합을 만들었고, 이곳이 아지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운영은 물론, 저희 부부가 맡아서 하고 있지만 이곳에 기를 채워주고 계신 분들은 무주군 예술인들이거든요.” 이곳에서는 캘리그라피와 한국화, 사진 강좌도 매주 열리고 있었다. 대전과 김천, 영동서도 찾아오는 수강생들도 여럿이 있을 정도로 입소문이 나있다고... 수강생들의 작품들은 카페 별채에 따로 전시를 하고 있어서 손님들 누구나 볼 수가 있다.     

서울토박이 무주 사람되다!
사는 이야기, 사람이야기로 마음을 열고 웃음을 나누는 사이 부부는 어느덧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귀촌한 지 올해로 10년째라는 부부. 서울서 살았던 김 씨는 국내는 물론, “삿포로 눈 조각대회” 등 국제대회에서도 대상을 거머쥐었을 정도로 잘 나가던 얼음조각 작가 생활을 청산하고 무주가 고향인 부인을 따라 무주살이를 시작했다고 했다. 숨 쉴 사이도 없이 바쁘게만 돌아가는 서울생활에 지쳐있었고 그때 잠시 들르러 왔던 무주가 그토록 편안하게 다가오더라는 것. “앞으로 남은 삶의 안식처가 돼 주리라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삼베마을로 유명하던 치목에 들렀는데 마을 분들도 너무 잘해주시는 데다가 비어있던 집까지 있어서, 그길로 마음을 굳혔지요.” 김 씨는 그 후 1년 남짓한 귀촌준비 끝에 치목마을에 둥지를 틀었다.
카페주인장 옷을 입은 편집디자이너 ? 목공예작가 
덕분에 디자이너의 꿈을 안고 야반도주하듯 고향을 떠났던 시골처녀 이 씨는 두 딸(15세 다연, 8세 다미)의 엄마가 되어 다시 무주 댁이 되었다. “의상디자이너가 꿈이었어요. 그런데 시골에서는 배울 수가 없잖아요. 도망치듯 서울로 갔는데 경제적으로 뒷받침이 쉽지가 않더라고요. 차선책으로 택한 길이 편집디자이너였는데 이제는 평생의 일이 됐습니다.” 시골생활이지만 카페 운영으로는 생계를 이어가기는 쉽지 않아 남편 김 씨는 목공예로, 아내 이 씨는 편집디자이너를 주업으로 이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부인 이 씨의 편집 작업실은 별채에, 남편의 목공예 작업실은 카페 아래층에 자리를 잡고 이들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었다.

10월의 마지막 밤을 서창에서
“이곳이 10년 넘게 비어있던 공간이었다고 그러더라고요. 생각해보면 저희를 기다려준 게 아니었나 그런 생각도 들어요. 입주한 지 1년 정도 됐는데 너무 애착이 가고 좋아요. 임대라 언제까지라는 기약은 없지만 있는 동안은 모든 열정을 다 쏟아내고 싶다는 생각이 정말 간절해요.” 자신들의 공간이지만 만인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부부는 10월의 마지막 날, 주민들과 예술인들, 그리고 관광객들을 위해 작은 잔치를 열 계획이다. “서창 붉은 빛 축제(17:00~)”. 카페 앞마당에 작은 무대를 마련하고 깊어가는 가을을 나눌 생각인 것이다. “짜여 지지않은 각본을 가지고 다 같이 어우러지는 무대를 만들고 싶어요. 통기타, 색소폰, 가야금 등 벌써 연주를 약속해주신 분들도 계시는데요. 누구나 오셔서 누구나 설 수 있는 무대였으면 좋겠어요.”

좋은 인연을 그려요!
무주살이 10년, 카페운영과 작품, 단체 활동에 재능기부로 이어가고 있는 봉사활동들까지 무주 곳곳에 부부의 발자취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무주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반딧불축제나 얼음축제, 군에서 열리는 다양한 행사에 많이 나가서 체험부스도 운영하고 다양한 활동들을 하는데 관광객들을 대할 때 여지없이 느껴요. 무주에 대해 무주사람들에 대해 전할 게 너무 많은 거예요. 이분들이 다시 찾아주셨으면 좋겠고 입소문도 내주셨으면 좋겠고 그런 거죠. 결국 무주에 좋은 분들이 많이 오셔야 무주도 좋은 거잖아요. 그래야 우리 아이들이 무주를 자랑스럽게 여길 테고... 카페도 그런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좋은 인연들이 생기고 이어지는 공간, 마음을 터놓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겠다 기대가 있는 공간이요” 환하게 웃는 부부의 모습과 함께 시나브로 어둠이 내린 서창갤러리_카페도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