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허무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친구나 직장 동료끼리 술을 마실 때 그런 생각은 더욱 굳어진다. 약간 취기가 돌면 농담 따먹기를 하지만 아주 취하기 직전 정도가 되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목소리를 낮게 깔고 자신의 인생론을 피력한다. ‘인생은 허무한 것’이라고 말이다. 그 근거로는 첫째, 시간적인 비교다. 인생의 짧음을 영원과 대비하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공간적인 비교다. 인간의 크기와 삶을 우주공간과 비교한다. 말하자면 인간을 한 마리 하루살이 벌레쯤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벌레인 이상 어떻게 살든지 간에 아무런 의미도 가질 수 없다는 논리를 전개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논리는 영원한 것과 거대한 것만이 의미가 있다는 유치한 사고방식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마치 도통한 사람처럼 엄숙해 보인다. 그들은 때로 인생이 허무하다고 말하는 것조차 허무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대표적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인생의 허무와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일생을 바라볼 때 그 시초와 종말 사이에는 무서운 심연이 가로놓여 있다고…. 시초에는 욕망에 사로잡히고 음락(淫樂)에 빠지게 되지만, 종말에는 모든 기관이 파괴되어 썩는 냄새를 풍기게 된다고 했다. 그는 또 아름다운 혼령이 꿈속에 잠겨있는 유년 시대, 죽음에 이르는 병고, 마지막 임종의 괴로움, 이렇게 관찰해보면 인간의 존재는 하나의 죄과이며, 그 결과가 나이를 먹을수록 더 뚜렷이 나타난다고 했다. 결론적으론 옳은 말이다. 
 비단 쇼펜하우어가 아니어도 허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우울증에 사로잡히게 되고 때론 자살이라는 끔찍한 행동을 감행하기도 한다.
 필자가 알고 있는 한 선배가 있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이 메시아라고 떠벌이다가 자신의 이론과 행동에 심한 괴리를 느껴 허무에 빠지고 결국 병고에 시달리다 비참하게 죽었다. 그 선배는 자신의 이론이나 영적 투시력이 노장공맹(老莊孔孟)이나 예수, 석가와 맞먹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나타내기도 했었다. 그는 술에 취하면 자신이 영원히 살게 된다고 말했으며 우주 전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입버릇처럼 지껄였다. 물론 필자는 그를 자아도취에 빠진 정신이상자로 취급했지만….
 다른 얘기를 해보자. 설부화용(雪膚花容)부생여몽(浮生如夢)이란 고사어가 있다. 눈처럼 흰 살결과 꽃처럼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도 꿈과 같은 것이며 인생은 항상 허무의 꿈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좀 비관적인 말인지 몰라도 인생은 아침나절에 잠시 피었다가 저녁에 시드는 꽃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우리는 학창시절에 논리전개를 배울 때, 연역법의 대표적 사례인 “모든 사람은 죽는다. 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나는 죽는다.”를 모범문형으로 수없이 익혔다. 사람은 천년만년 살 것 같은 착각을 하면서 죽는다는 걸 잊어버리고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정치가 이전투구(泥田鬪狗)가 안 될 것이고, 경제는 마찰음이 덜 할 것이고, 사회는 불온하고 험악하지 않을 것이다.
 죽음이 도둑같이 오는 것이고 삶이란 게 제한적임을 안다면 우리의 관심은 특정인에서 불특정다수인으로 관심이 넓어질 것이다. 허무주의는 쓰러지는 허무감이 아니라 일어서는 허무정신으로 다가와야 하는 것이다. “철들자 노망난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가 인생을 안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고 인생을 안다 싶으면 거개가 만시지탄(晩時之歎)인 것이다. 그래서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도연명(陶淵明)은 분석철학의 대가이고“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렵다”는 주자(朱子)는 계량철학의 대표라고 봐도 될 것이다.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허무를 느끼지 않을 수도 있지만 결국 인생이란 허무한 것이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성경의 전도서이다. 죽음은 내가 태어나기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것. 언젠간 우리 모두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사라진다. 그러면 삶의 허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은 자신의 삶 가운데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나아가 영성적인 깨달음에(종교) 도달하는 것이다.

신 영 규/한국신문학인협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