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람 쐬는 길을 무척 좋아한다. 틈만 나면 혼자서 거닐고 자전거로도 달린다. 오늘은 친구와 함께 남천교 청연루에서 만나 바람 쐬는 길을 걷기로 했다. 청연루는 무지개다리 형태의 교각에다 한옥 누각을 올린 독특한 양식으로 정면9칸 측면 2칸의 평면에 팔작지붕 모양의 전통 한옥 목조의 누각으로 건축, 주변 전통 한옥마을, 전주천의 자연환경과 잘 어우러져 전통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전주천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풍류를 즐길 수 있는 명소라고 할 수 있다.
 한벽당 뒤로 옛 기찻길 터널이 있는데 여기서부터 ‘바람 쐬는 길’이다. 바람 쐬는 길은 전주의 정식 행정지명이다. 한벽당에서부터 색장동까지 가는 길을 이렇게 부른다. 왼쪽에는 치명자산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전주천이 흐르고 있다. 전라선이 지나던 기찻길이었지만 지금은 레일을 뜯어내고 산책로와 자전거 길을 만들었다. 가족, 연인, 친구와 함께 이 길을 걷노라면 기적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풍운의 꿈을 안고 대도시로 떠나던 푸른 시절의 추억도 담겨 있다.
 천천히 느리게 바람과 친구하는 길, 바람 쐬는 길에는 감동이 동행한다. 굴 왼쪽 편에는 전주시 자연생태박물관이 물고기 모양으로 멋지게 서있고 오른쪽에는 수변생태공원이 있다. 박물관에는 공룡시대, 체험학교, 확대경으로 관찰하기, 자연생태체험관, 친환경에너지체험관 등 유치원 원아들의 학습장이 마련되어 있다. 실개천에서는 어린이들이 미꾸라지와 송사리를 손으로 잡으려고 애쓰고 있다. 참으로 귀여운 모습들이다. 야외 학습원에는 복수초, 비비추, 섬초롱꽃, 관중, 옥잠화,  용담, 원추리, 노루오줌, 용머리, 범부채, 말라리, 참나리, 금계국, 백리향, 할미꽃, 패랭이꽃, 작약, 금낭화 등 수많은 꽃과 풀들이 예쁜 모습 자랑이다. 수변생태공원은 어른들도 많이 거닐고 있다. 친구와 나도 따라서 걸었다. 오른쪽의 전주천에는 우리네 이야기가 흐른다. 그것이 흘러흘러 역사가 되었다. 임실군 관촌면 슬치에서 발원해 전주시의 중심을 흐르는 전주천은 생태계를 성공적으로 복원시킨 사례로 손꼽힌다. 수달, 쉬리, 갈겨니, 원앙 등 30여종의 지표생물과 100여종의 곤충 서식지가 되고 있다. 
 아스팔트로 포장이 잘 된 길 옆 느티나무는 줄지어 서서 하늘을 가리고 그 밑의 길 가에 곱게 핀 샤스타레이지 흰 꽃이 곱게 피어 귀엽기도 하다.
 잠시 걸으니 승암경로당이 나왔다. 초라하고 야윈 노인들이 느티나무 그늘에 자리를 깔고 처량하게 앉아 졸고 있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려왔다. 나도 더 늙고 병약해지면 저 모습이 아닐까! 주차장 옆에 자전거 대여소가 있다. 전주시에서 운영하는데 한 시간 대여료가 천원이란다. 자전거도 모두 새것이라 한번 빌려 신리까지 다녀오고 싶다.
 느티나무숲길을 계속 걸으니 치명자산 성지가 나왔다. 1784년 호남지역에 처음으로 천주교를 전파하다 시국사범으로 처형된 유항검의 아들 유흥철(요한)과 아내 이순이(루갈다)가 신유박해 때 순교하여 산 정상에 묻혀 있는데 이들 부부는 독실한 신앙생활을 위해 4년 동안 동정을 지키다 순교한 것으로 유명하다. 벼랑 끝 십자가를 세운 성지 아래로는 화강암으로 세운 산상성당이 있으며 산비탈을 따라 오르는 십자가의 길은 최고의 성지 순례길로 꼽힌다. 순교자의 언덕이라는 의미의 파리 몽마르뜨 언덕처럼, 야외음악회와 소풍지로도 사랑받는 몽마르뜨 광장과 신도들이 손수 조성한 기도꽃길은 조용히 명상하며 정상까지 오를 수 있어 천주교 신자가 아닌 이들도 즐겨 찾고 있다. 바위로 이루어진 산 정상에서는 전주시가 한눈에 들어오며 일몰풍경을 담으려는 사진작가들도 많이 찾고 있다.
 색장리 색장경로당이 바람 쐬는 길의 종점이다. 경로당 옆에 수령 200년이 넘는 보호수 느티나무가 있다. 수고 30m, 나무둘레 3.5m란다. 시원한 나무 그늘에 원탁 의자가 있어 둘이서 편히앉아 쉬며 정담 나누고 소주 한 잔 주고받으니 피로가 확 풀렸다. 새로 난 철길로 기적소리 요란하게 울리며 달리는 서울행 열차를 보니 옛날 사범하교 다닐 때 한벽터널을 통해 바람 쐬는 길로 달리던 증기기관차가 떠올라 옛 추억에 잠기기도 했다. 혼자서 자주 걷던 길인데 둘이서 걸으니 즐겁고 발걸음이 가벼운 느낌이다. 녹음 짙은 숲길을 거니는 것은 보약을 먹는 것과 같다고 했다. 걸으면 걸을수록 신나는 길, 녹음의 향 풍기는 길, 추억이 깃든 길, 공기 맑고 신선한 길, 기쁨을 안겨주는 길인 바람 쐬는 길을 걸으면 행운과 건강이 따르리라 믿는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씩 화요일과 금요일에 친구들과 어울려 등산을 하는데 등산하지 않는 날은 매일 바람 쐬는 길을 걸으려 한다.

전 재 식/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