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라는 말을 하지만 실제 많은 이들은 직업에는 귀천이 있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노동에는 귀천이 없지만 직업에는 귀천이 있다.”는 말을 한다. 얼핏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직업에도 귀천이 있다고 그냥 말하면 뭔가 속물스러워 보일까봐 꾸며낸 표현이 아닐까 싶다. 왜냐면 직업은 노동의 형태에 따라서 정의되므로 어느 한쪽에 귀천이 있다면 다른 쪽에도 그 속성이 같이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동에 귀천이 없으면 직업에도 귀천이 없다. 귀천의 기준은 몇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수입이 많고 적으냐가 큰 기준으로 적용된다. 권위나 인기 같은 것도 기준이 되지만 결국 권위나 인기가 많은 직업은 대부분 수입도 많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끝과 시작은 돈 얘기다.

필자와 가깝게 지내는 후배가 있다. 전에 모 지방신문에서 몇 년간 같이 근무한 후배다. 그는 전북의 모 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일반대학원에 진학, 법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같은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여 사회학석사학위도 받았다. 그리고 지금은 방송대학교에서 청소년교육학을 공부하며 학문과 견문을 넓혀가고 있다. 하지만 이렇다 할 직업이 없다. 직업이라야 고작 저녁에 우유대리점에서 몇 시간 정도 알바를 하여 번 돈으로 겨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의 나이가 벌써 불혹이 됐다. 결혼도 해야 되고 집도 마련해야 되는데 직업도, 돈도 없으니 배우자가 선뜻 나타나지 않는 모양이다. 석사를 두 개 가지고 있고, 또 다른 학문을 위해 매진해도 돈이 없으니 결혼은 엄두를 못 내고 있는 것이다. 필자도 코가 석자인데도 그 후배를 볼 때마다 안타깝다.

때론 내가 돈을 벌기 위해 사는 건지, 살기 위해 돈을 버는 건지 아리송할 때가 있지만 사실 돈 버는 일 자체가 삶이다. 이보다 더 귀중한 삶이 어디 있겠는가. 아마도 성직자나 그와 비슷한 직업을 가지지 않은 이상, 돈 버는 일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아니, 성직자들도 자신의 안락한 삶을 위해서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돈을 벌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세월호 실소유주인 유병언 전 세무그룹 회장은 이른바 구원파 교회에서 “기업이 곧 교회요, 기업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 바로 예배”라고 설교했다. 돈을 부지런히 만들고 정성으로 섬길 때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맘몬교’의 교리를 인용한 셈이다. 맘몬은 성경에 등장하는 ‘돈의 신’이다. 예수가 가장 우려했던 것이 맘몬의 인간지배였을 만큼 그놈은 막강한 영향력을 지녔다. 그러나 예수의 우려는 적어도 한국에선 현실이 돼 버린 지 오래다. 어디 구원파 뿐이겠는가. 한국의 많은 교회들이 맘몬교회처럼 돈을 밝히고 있지 않는가. (필자는 일부 대형교회를 기업으로 보고 있지만…….) 교회가 그럴진대 기업은 오직하겠는가. 대다수 기업들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벌이에만 몰두하지 않는가.

요즘은 10억 원을 모아야 근심 걱정 없는 노후생활이 가능하다고 한다. 어느덧 10억 원이라는 돈은 평범한 사람들의 꿈이 되었다. ‘10억 원 신드롬’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서민들 입장에선 상상도 못할 액수다. 직장인은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매도 자녀 학비대고 생활비 쓰다보면 10억 원을 모으기가 매우 어렵다. 하지만 돈이 있어야 사람대접을 받는다. 돈이 있어야 기죽지 않고 떳떳하다. 아무리 학벌이 좋고, 지식이 많아도 돈이 없으면 초라하게 산다. 특히 수명이 길어지는 요즘 시대에 모아둔 돈이 없는 사람은 바람 앞의 등불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돈은 곧 에너지다. 에너지를 많이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경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한 잘못된 수단에 있다. 가난한 서민들은 부족한 돈으로 생활을 꾸려나가야 하니 그렇다손 쳐도, 재벌 총수, 정치인 등 힘 있고 많이 가진 사람들이 오히려 더 게걸스럽다. 마치 불길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보인다.

사실 사는 일이 돈을 버는 일이고, 돈을 버는 일이 사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어떤 인생이 성공한 인생이고 훌륭한 삶을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은 돈에 달려 있다. 즉, 누가 더 돈을 많이 버느냐 하는 것이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선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 그런데 돈 버는 일이 어디 쉬운가. 그 놈의 돈, 인간은 언제부턴가 돈의 노예가 되어 있다. 돈, 돈이 원수로구나.

신 영 규/전북수필 주간 겸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