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올림픽에 참가한 한국선수단의 실적이 예상보다 부진하다. 목표했던 3회 연속 10위권 유지는 물론 아시아 1위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주력 종목인 빙상에서 성적이 부진한 탓이다. 물론 감동의 레이스를 펼친 선수들도 있다. 특히 박승희 선수는 쇼트트랙 여자 500m에서 예선부터 준준결승, 준결승을 모두 조 1위로 통과했다. 마지막 순간 불운에 쓰러졌다. 결승에서 선두를 달리다 미끄러진 다른 선수에 밀려 같이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 달리다 또 넘어졌다. 그는 다시 씩씩하게 일어나 완주해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얼마나 장한 일인가? 패기와 투지 하나로 포지하기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너무 감동적이다. 이를 멀리서 바라보는 국민의 가슴은 벅차오른다. 박승희는 “금메달을 못 따 아쉽지만 마음을 추스르고 후배들과 남은 경기를 잘 하겠다.”고 했다. 불운을 털고 일어나는 자세가 대견하다.
  그러나 이번 소치올림픽의 결과는 아쉬움과 함께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고질적 병폐인 파벌에 밀려 한국대표팀에서 배척 받은 안현수(러시아명 빅토르 안) 선수가 러시아에 귀화해 금메달을 딴 게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론 마음이 아프다. 비단 금메달 하나가 아쉬워서가 아니다. 국적을 바꿔서라도 공정한 평가를 받고 싶었던 선수가 한 사람 뿐이었겠는가. 유도의 추신수도 파벌의 벽에 국적을 버렸다.
  안현수 선수가 쇼트트랙 남자 10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데 대해 한국인들이 보이는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다. ‘조국을 배신한 매국노’라는 비난 대신 안 선수를 내친 빙상연맹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더 크다. ‘빙상연맹’이 아니라 ‘빙신연맹’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다. “오죽하면 국적까지 바꿨겠느냐.”며 대한빙상연맹을 비난하는 글이 폭주해 한때 연맹 사이트가 마비될 정도였다.
  우리 국민 10명중 8명은 “안현수 우승이 오히려 통쾌했다.”고 답했다. 안 선수에 대한 응원 열기는 일종의 ‘대리만족’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파벌과 부조리가 판을 치는 불공정한 한국사회에 대한 불만이 안 선수를 통해 해소된 것 같이 느낀다는 것이다. 안 선수는 8년 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3관왕을 차지한 뒤 한국 빙상계의 파벌 문제 등으로 러시아에 귀화해 다시 올림픽에 참가했다.
  한체대와 비한체대 파벌 싸움은 2006 토리노 올림픽 당시 극에 달해 있었다. 코치가 어느 대학 출신이냐에 따라 선수들이 훈련을 달리 했을 정도다. 안현수의 아버지 안기원 씨는 모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현수는 비한체대 선수들에게 따돌림과 심한 견제를 받아 왔다. 비한체대 출신 코치는 ‘외국 선수들에게는 져도 된다. 안현수만 막으라’고 지시를 했다.”고 당시의 억울한 심경을 토로했다. ‘국가대표는 곧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등식이 생기면서 좁은 관문을 통과하기 위한 선수들끼리의 ‘짬짜미’가 지도자를 통해 노골적으로 전달됐다. 이러니 안현수는 국적을 바꿔서라도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고 싶었을 것이다.
  한국의 ‘쇼트트랙 황제’ 안현수가 러시아의 ‘영웅’ 빅토르 안이 된 현실에는 한국 빙상계의 패거리 문화와 성적 지상주의 등 부조리한 측면이 크다. 이참에 빙상계 뿐 아니라 한국스포츠계의 파벌 조성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평창에서 똑같은 전철을 밟을 것이다.
  주지하듯이 스포츠는 어떤 분야보다도 객관적이고 공정함이 담보될 수 있는 분야다. 기록이 매겨지고 수많은 관중이 지켜보기에 승부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기가 어렵다. 파벌로 인해 실력 있는 선수를 배제시킨다면 이는 한국체육발전을 가로막을 뿐 아니라 제2, 제3의 안현수가 나올 수 있는 것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기회에 사회 전반에 걸쳐 1등 지상주의와 이로 인한 병폐를 되돌아봐야 한다. 예전에 오노가 한국의 금메달을 도둑질해 갈 때 온 국민이 분노한 적이 있다. 근데 이번에 또 한국빙상계가 사리사욕으로 인해 값진 금메달 하나를 놓친 격이 아닌가? 체육계의 맹성을 촉구한다.

신영규/전북문협신문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