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단상

민족 최대 명절인 설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어렸을 적 설날이 다가오면 맘이 무척 설레었다. 가슴 가득 두근거림을 안고 설날 한 달 전부터 날마다 몇 밤을 더 자면 설날인지를 손꼽아 기다렸다. 특히 설 전날(섣달 그믐날)눈이라도 내리면 더욱 신이 났다. 친구들과 어울려 고샅을 쏘다니기도 하고 편을 갈라 눈싸움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콩닥콩닥 뛰는 가슴으로 설날 아침을 기다렸던 이유는 다름 아닌 세뱃돈이었다. 설빔을 곱게 차려입고 어른들께 세배를 하고 나면 어김없이 세뱃돈을 쥐어 주었다. 그 당시(1960년대 후반) 세뱃돈이라고 하면 1원짜리 동전이나 5원짜리 지폐, 좀 여유 있으면 10원짜리 지폐를 주기도 했다. 당시 1원이면 왕사탕 5개를 주었으니 10원의 가치는 상당히 컸었다.
지금은 이웃 어른들에게 세배하는 풍습이 거의 사라졌지만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는 친구들과 떼를 지어 동네를 돌아다니며 어른들을 찾아가 세배를 했다. 그러면 어른들은 반드시 설음식을 내어놓고 먹으라고 권하시고 세뱃돈을 주셨다. “뉘 집 아들이며, 나이가 몇 살이냐.”고 묻는다든가 “공부 열심히 하고 어른들 말씀 잘 들으라.”는 이런저런 덕담도 해주셨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때 동네 어른들의 그런 격려와 충고의 말씀보다는 세뱃돈에 더 관심이 컸다.
이렇게 설날은 먹을 것도 많고 세뱃돈이 생기는 등 소득이 아주 많은 날이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1년에 몇 번씩 설날이 돌아오면 얼마나 좋을까? 엎드려 절 한번 하고 세뱃돈을 받으니 이 이상 기쁜 일이 또 어디 있으랴. 옛날 생각하면 지금도 세뱃돈을 받고 싶지만 부모님이 다 돌아가신 지금, 세배 할 사람이 없으니 세뱃돈은 이제 설날의 아련한 추억으로 남을 수밖에…….
설날에는 조상에 차례를 지내고, 친척이나 이웃 어른들에 세배를 하는 것이 고유의 풍습이다. 그믐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샌다고 하여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설날부터 정월 대보름까지의 15일 동안을 정초라 하며, 이 기간 동안 행하여지는 여러 풍습이 전해진다.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한 후에는 윷놀이ㆍ널뛰기ㆍ연날리기 등 여러 민속놀이를 하며 이 날을 즐겼다.
그런데 설날 아침에 왜, 부모님이나 어른들께 세배를 하는 것일까. 세배라는 것이 언제부터 유래되었을까. 조선시대엔 세뱃돈 풍습이 없었고, 세배를 하면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덕담을 하고, 서로 음식을 나눠먹었다고 한다. 당시, 신하들이 신년하례를 하면 임금님이 제주도 귤을 4개씩 줬다는 기록이 있다. 세뱃돈 풍습은 구한말 이후, 중국이나 일본에서 들어와서 퍼진 것으로 알고 있다. 일제시대나 해방 후엔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서 주춤했다가 가계 살림살이가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한 1960년대 중반부터 아이들에게 10원짜리 지폐를 세뱃돈으로 주는 풍습이 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설날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음식이 바로 설날 아침에 먹는 떡국이다. 가래떡을 이용해 만든 떡국은 밝은 새해 첫날을 상징하며 동그란 떡의 모양은 태양을 상형한 것이다. 태양의 밝고 힘찬 기운을 얻기 위해 가래떡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 한편으로는 떡의 동그란 모양이 돈을 상징해 부를 얻고자 하는 바람에서 가래떡 떡국을 먹었다는 말도 전해진다.
설은 특히 한 해를 시작하는 명절인 만큼 그 해의 안녕과 복을 비는 풍습이 다양하게 발달해 있다. 섣달 그믐날 밤 자정 이후, 혹은 설날 이른 아침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 엮어 걸어두는 복조리가 그 대표적인 예다. 돈이 들어오거나 액을 쫓으라는 의미로 그 안에 돈이나 팥을 담아두기도 한다. 예전에는 초하루 전날 밤이면 어김없이 조리 장수가 마을을 돌아다니며 복조리를 팔곤 했는데, 요즘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우리 고유의 명절인 설. 그러나 언제부턴가 설날을 가족 및 친지들과 함께 보내기보다는 해외여행을 떠난다거나 각자 여가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것도 아니면 그저 쉬는 날, 혹은 귀찮은 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기에 해마다 명절이 오면 희비가 교차한다. 즉, 여유 있는 사람은 기쁘겠지만 삶이 팍팍한 서민들은 우울하기 짝이 없다. 이런 면을 고려하면 명절은 기쁨과 슬픔의 교차로 같다. 하지만 모처럼 맞는 설 연휴만큼은 걱정근심 잠시 내려놓고 가족 친지와 함께 즐겁게 보냈으면 한다.

신 영 규/전북수필 주간 겸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