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고도 앞을 못 보는 사람을 ‘맹인’이라 하고, 글을 모르면 ‘문맹’, 컴퓨터를 모르면 ‘컴맹’, 지혜가 없는 사람은 ‘지맹’(智盲), 덕이 없으면 ‘덕맹’(德盲)이라 부른다. 결국 이 세상에는 맹인 아닌 사람이 없는 셈이다. 누구나 건강한 눈으로도 600m를 벗어나면 사물을 알아볼 수 없으며, 그것도 캄캄한 밤중에는 한치 앞도 알아볼 수 없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성이다.
 지식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대학에서 어떤 학문을 전공하고, 또한 명망 높은 대학자(大學者)에게 사사(師事)를 받아 일가를 이룬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가 알고 있는 지식의 범주는 극히 편협 된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400여 년 전에 지동설을 주장했던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오를 심판한 로마 학자들의 편견이 그렇고, 수년전에 무고한 사람을 살인범으로 몰아 사형을 집행한 뒤, 진짜 범인이 그 후에 나타나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일은 역시 불완전한 인간의 한계성을 드러낸 실례라 하겠다.
 어디 그뿐인가. 육지와 바다의 대비를 놓고 말할 때, 육지는 바다의 3분의1밖에 안 된다는 것은 하나의 정설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바닷물을 담고 있는 받침이 되고 있는 땅은 바로 육지이다. 그리고 물과 불의 성질을 놓고 우리의 인식에도 오류가 빚어지고 있다. 즉 물은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낮은 데로 낮은 데로만 흘러가는 물의 겸손을 배워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은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강물의 근원은 빗물이며, 빗물은 구름에서 비롯되고, 그 구름은 다시 수증기에서 생긴 것이다. 그러니 물이 증발하며 하늘 높이 치솟는 현상을 보면서 물은 아래로만 흐른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불의 특성도 그렇다. 성냥불이나 촛불을 켰을 때 그 불꽃은 위로 솟는다. 산불이나 화재가 났을 때에도 물론 그 화염은 위로 솟구친다. 그러나 불의 근원은 태양이며, 저 태양의 광열은 수십억 년 동안 한결같이 아래로만 내리쪼이고 있다. 그래서 인간의 능력이란 결코 완전치 못하다는 것이다. 제아무리 시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자기 눈으로 볼 수 있는 인식만으로 모든 사물을 올바르게 파악한다고 할 수 없으며,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만을 고집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렇듯 볼 수 있는 것보다 볼 수 없는 것이 더 많은 인간의 한계성, 이것을 극복하는 길은 차라리 눈을 감고 보는 것이다. 눈을 뜨면 600m 앞만을 볼 수밖에 없지만, 눈을 감으면 더 멀리 무제한의 시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는 눈을 감을 줄 모르는 사람들 때문에 온통 사회 혼란이 증폭되고 있다. 너무 이해타산만을 앞세워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온갖 비리와 부정이 끊이지 않고 있다. 눈을 뜬 채, 돈을 보면 그저 물욕의 대상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눈을 감고 돈을 본다면 많은 독과 가시가 들어 있는 것도 보게 된다. 우리가 음식물을 섭취할 때에도 뉘와 티는 골라내야 하거늘, 하물며 독과 가시가 들어있는 그 돈을 함부로 착복하고 어찌 무사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마음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그릇이란 어떤 것을 담느냐에 따라 그 용도와 가치가 정해진다. 즉 향을 담는 그릇에서는 향내가 나고, 썩은 것을 담은 그릇에서는 구린내가 난다. 우리의 마음 그릇도 항상 의롭고 선한 생각만 담고 있으면 고매한 인격적인 향내가 난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만인으로부터 우러름과 존경을 받게 된다.
 ‘배움은 깨달음만 못하고 행동은 생각만 못하다.’는 격언이 있다. 명문 대학에서 특별한 학문을 배웠다 하더라도 그 학문의 핵심적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그 익힌 학문이 소용없게 된다. 또한 아무리 생활 덕목에서 실천적 행동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생각 없이 마구 행동하는 사람을 보고 누가 존경하겠는가.
 생각을 앞세우는 사람은 현명해지지만, 행동을 앞세우는 사람은 어리석어진다. 따라서 행동에 앞서 늘 생각하는 여유를 갖는 삶이야말로 이 시대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할 생활의 지혜일 것이다.
 

 곽 병 술/시인ㆍ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