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 다녀와서 사온 물건들을 정리하다 보면 비닐이 한 아름이다. 이런 사정은 백화점엘 다녀와도 마찬가지이다.
 비닐을 안 받겠다고. 그냥 들을 수 있는 데까지 맨손으로 들고 가거나 가방에 넣어 가겠다고 거의 강박적으로 손을 젓는 형편이다. 그러는 데도 매번 시장의 아주머니들은 비닐은 “서비스”인데 왜 그렇게 마다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 들이다.
 하기는 시장의 점포 한 견의 비닐들은 내 외출복보다도 더 날렵하게 다림질되어 얼마든지 걸려 있다. 상인들이 비닐처럼 후하게 인심을 쓰는 품목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생선이라든가 고기라든 가에 이르면 비닐을 안 받고는 별수가 없는 일이 벌어진다.
 게다가 밖에 나갔다 오는 길에 급하게 장을 보는 날에는 장바구니마저 잃어버리기 일쑤여서 비닐이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을 길은 없어 보인다. 그런 날은 집으로 돌아와 갑자기 숨이 탁탁 막혀오는 기분이다. 그 검은 비닐들이 쓰레기와 함께 쌓여 있다가 부드러운 흙 속에 섞여 들어간 장면이 금방이라도 눈에 펼쳐지는 듯하다.
 그래서 우리 집에 들어온 비닐들은 쓰레기통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쌓여있다. 그런데 그다음이 문제였다. 바구니에 쌓이는 비닐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데 더는 용도가 마땅치 않았다.  물론 큰 비닐은 쓰레기 봉투 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작은 비닐은 물기가 있는 쓰레기도 버려보곤 하지만 그것 역시 무책임하게 땅으로 버려지는 건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막막해지는 것이었다.
 각종 매체에서는 주부에게 호소하고 있다. 환경을 지키는 파수꾼. 어쩌고 하면서 추켜세우기도 한다. 마치 주부들의 손에 이 나라의 땅과 미래가 전적으로 달린 것처럼 말이다. 물론 쓰레기를 줄이고 자원을 재활용하는 데는 주부뿐만 아니라 가족구성원들의 협력이 절대적이다. 개인들의 노력이 모이면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비닐에 생각이 이르면 막막해진다. 빨래하기 쉽도록 한다는 “고농축” 세제들이 공장에서 꾸역꾸역 생산되는 것을 생각하면 더없이 비관적인 미래가 상상이 된다. 인간들이 돈을 들여 만들어 놓은 그 기계 설비와 그 생산품을 밀폐용기에라도 넣어 영원히 폐기하지 않는 한 그것은 곧 나의 밥과 나의 물에 뒤섞이게 될 것이니까 말이다.
 이 비닐들이 흙과 뒤섞여 땅의 숨통을 틀어막은 다음에 그것을 회복하는 데 드는 비용. 혹은 세제 거품이 강과 바다에 흘러든 뒤 그것을 정화하기 위해서 드는 비용과. 미리미리 썩는 비닐만을 사용하도록 규제하고 미리미리 천연 원료의 세제가 아니면 생산을 금지한 뒤에 그 차액을 정부나 기업 그도 아니면 소비자가 부담하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경제나 경영을 전공하는 사람이 아니니 잘 알 수는 없지만 아마 후자 쪽이 결과적으로 더 경제적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그렇다면 비닐과 세제값은 오르겠지만 오른 만큼 아껴 쓰는 것이 원래 우리 습성이고 아껴 쓸수록 우리가 자연에 대해 저지르는 죄가 좀 가벼워진다면 아마도 그것을 반대하는 주부는 없을 것이다.
 또 아는가. 비닐을 모아오는 주부들에게 시장 아주머니는 배추 한 단을 상품으로 주게 될지?
 주부들이 만나면 아이들의 교육문제가 큰 걱정거리라고 말한다. 피아노. 미술. 수영 게다가 글짓기 등 어떤 재능을 어떻게 계발을 할지를 말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자랐을 때 제대로 마실 샘물 하나 없고 벌레 한 마리 숨 쉬지 못하는 땅만이 남게 된다면 피아노와 미술과 글짓기가 대체 무슨 소용이라는 말인가?
 지금 주부들은 할 만큼하고 있다. 신문지도 모으고 우유 팩까지 설거지하고 말리고 오려가면서 말이다. 그러니 이제 환경에 대한 공은 정부나 기업 쪽으로 넘겨져야 하리라고 본다.

허 성 배 /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