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민족의 역사요 얼이다

나라를 지키는 것이 국방이라면 역사와 민족을 이어 가는 것은 글이다. 지구 위에 사는 인종 중에 말이 있는 종족은 많지 않다. 또한. 글이 없는 종족은 많지만. 글이 있는 종족은 역사로 남는다.
지구 상의 많은 동물은 모두 자기들만의 말이 있다. 그리고 생각도 있고 어느 정도의 생존 본능의 지혜도 있다. 그러나 글로 의사를 표시하고 주고받는 동물은 없다. 민족을 이루고 사회를 형성하고 국가를 세우고 사는 인간들에게 글이 없다면 동물과 다를 바 없다고 할 수 있다.
글이 민족으로 반죽이 되고. 인류가 글로 기둥을 세운다. 글로 세워진 기둥이 나라를 만들고. 그 민족과 국가는 역사에 길이 남는다. 그러므로 말과 글과 전통문화는 민족의 뿌리요 실체이며. 그런 민족과 국가는 역사로 보존된다. 우리 민족은 통한의 36년간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어도 말과 글이 있었기에 나라를 다시 찾을 수 있었고. 국가를 재건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 민족을 보라. 2000년 동안을 나라 없이 지구에 흩어져 살았지만. 그들에게는 선민의식이 있었고 글이 있었기에. 1947년 다시 이스라엘을 건설하고 민족이 모여들어 작지만 강한 국가로 발전하고 있다.
몽골는 칭기즈칸이 중원을 정복하고 지금의 월남 땅까지 세력을 넓혔지만. 그 민족이 지금 강대국으로 이어 오지 못하고 전설 속에 흔적으로 남아 있는 것은 그 민족이 말은 있어도 글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 글이 없어 한 나라의 한문을 빌려 쓰고 있었다.
일본이 우리 미족을 영원히 멸망시키기 위해 우리말과 글을 못 쓰게 하고. 일본 말 일본 글로 우리 나라를 정복하려 했다. 민족은 피로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말과 우리글과 뿌리. 그리고 전통으로 이어 흐르는 문화가 있어야 비로소 계승되는 것이다. 우리들의 후손들이 비록 미국을 비롯한 지구촌 재외교포로 살아가지만. 말과 글과 문화가 지켜지고 이어질 때 비로소 한민족으로 남고 대한민국을 모국으로 가슴에 품게 될 것이다.
요 얼마 전 워싱턴에 한글학교 학생들이 글짓기와 단어 쓰기에서 놀랄 만한 성과를 올렸다고 한다. 미국에서 출생한 고등학생이 300개 단어 쓰기에서 한 개도 틀리지 않고 적어내 심사위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또 글짓기에서 4세 때 미국에 온 학생이 나의 정체성에 대한 글을 사실적으로 표현해 우수작으로 선발되기도 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우리 재미 학생들이 한글과 미술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며. 민족의 뿌리와 얼이 아름답게 계승되는 것을 실감할 수 잇다. 이민 1세인 우리들이 후손들에게 말과. 글과 얼을 이어주지 못한다면 우리들은 시대적 소명을 망각하고 역사적 사명을 기피하는 부끄러운 조상이 될 것이다.
800만 재외동포와 그 후손들을 가슴 저리게 생각하고 지켜 주고 후원해 주는 조국의 해외동포 자녀들의 모국교육 정책도 중요하겠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과 같이 우리 스스로가 가정에서 교포재단에서. 교회에서 한글학교에서 말과 글을 배우고 가르치는 슬기로운 민족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올해로 제567주년 한글날(매년 10월 9일)을 맞이하면서 우리나라 역사에 가장 훌륭한 세종대왕의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생각해야 한다. 또 한글을 만들기 위해 젊은 학자 성삼문이 중국학자 황천을 찾아 명나라를 13번이나 다녀온 노고도 알아야 한다. 우리는 24자 한글로 26자 영어보다도 더 자유롭게 표현하고 과학적으로 아름다운 글을 가지고 있는 자랑스러운 민족이다. 이렇듯 세계적으로 제일 우수한 한글을 뒤늦게나마 국경일로 제정한 것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일 고구려 시대에 세종대왕 같은 왕이 있어 광개토대왕비가 한글로 쓰였다면. 아니. 한문과 섞여 쓰였더라도 지금 중국이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는 역사 왜곡의 욕심은 부리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한민족이 역사에 남는 민족이 되고. 할아버지와 손자가 하나의 뿌리. 하나의 줄기로 뻗어 가는 영원무궁한 민족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말 우리글을 금쪽같이 여기고 배우고 가르쳐야 한다.

허성배/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