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한잔 합시다.’
  이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막걸리 한잔 하자는 말은 ‘소주 한잔 하자.’는 말이나 ‘맥주 한잔 하자.’는 말과는 사뭇 다르게 들릴 것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막걸리’라는 단어가 ‘소주’나 ‘맥주’라는 단어보다 정감이 가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막걸리가 가지고 있는 매력은 무엇인가? 막걸리는 인생의 술이다. 막걸리는 서민들의 애환이 절절이 묻어 있는 술이다. 막걸리는 농민의 일손에서 벗하며 허기를 달래주는 정이 있는 술이다. 그러기에 이에 얽혀있는 개인들의 에피소드도 다양하다. 또한 저렴한 가격과 남녀노소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술이기에 과거부터 서민들이 즐겨 마셨고, 예전엔 집집마다 직접 막걸리를 만들어 먹었다. 서민들이 서로의 정을 나누는 방식 중 하나가 막걸리였다.
  막걸리 하면 들일 하다 참에 곁들이는 농주, 아니면 막노동 뒤에 갈증과 허기를 함께 달래는 술로 홀대(?)하거나 주머니 사정이 얄팍할 때에 술 고픔을 면하는 싼 술로 치부해온 게 언제였더냐 싶게 요즘엔 반주로 의례 막걸리를 찾기 마련이고 심지어 격조 높은 정상 간 공식 만찬에 건배주로까지 그 격이 오르게 되었다. 다정한 벗들과 어울린 산행에 한 땀 흘리고 하산 후 점심상에 곁들이는 막걸리 맛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특히 막걸리는 항암물질이 와인이나 맥주보다 최고 25배에 달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인지 요즘엔 너도나도 막걸리 사랑이 거세다. 참으로 세상은 유전(流轉)한가? 한땐 돌아보지도 않던, 그래서 대형 슈퍼매장에 가도 늘 한쪽 구석자리에 외롭게 서있던 막걸리가 이젠 일등상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대생들에게 언제 막걸리를 마시고, 언제 소주를 마시는지 물어봐 이를 보도한 신문기사를 읽었다. 여대생들 대답은 이랬다. 친구들과 수다스럽게 얘기하고 싶을 때는 막걸리집으로 가고, 기분이 좋지 않아 취하고 싶을 때는 소줏집으로 간다고. 막걸리는 알코올 도수 6%이고, 소주는 20%다. 아마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갈수록 도수 높은 술을 찾게 되는 모양이다.
  사실 술 한 잔 하자고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술은 확률상 소주나 맥주일 것이다. 알코올 섭취량으로 보면, 성인남녀의 전체 알코올 소비량 중 50% 이상을 소주가 차지하고, 마시는 양으로 보면 맥주가 5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술 한 잔 하자는 말이 ‘대포 한 잔 하자.’였다. 지금도 허름한 동네 술집의 간판이나 문짝에는 ‘왕대포’ 혹은 ‘대포집’라고 쓰여진 글자가 종종 눈에 띈다. 대포는 큰 술 잔이라는 뜻이다. 이 큰 술잔에 담긴 술이 바로 막걸리였다.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을 표현할 때 흔히, 말술을 마신다고 하는데, 이때 말술로 마시는 술도 역시 막걸리 종류다. 소주를 말로 먹으면 술 잘 마신다는 소리를 들을 새도 없이 골병이 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막걸리’, 그 이름부터가 부드럽고, 친근해서 좋다. 막걸리는 ‘막 걸러낸 술’이라 해서 그렇게 부르게 된 것이다. 막국수, 막김치, 막장, 막소주, 막회 등 음식뿐 아니라 막사발, 막일, 막노동, 막춤 등에서 보듯 우리말에 ‘막’이란 접두사가 붙으면 얼핏 조악(粗惡)하고 성글어 세밀하거나 세련되지 못한 것들을 이르는 것 같지만, 한편 그것은 민초(民草)의 오랜 생활 속에서 생겨나고 농익어 친숙해진 것들로 좀 거칠고 정제(精製)를 벗어난 그 파격(破格)의 멋이 삶속에 깊이 침전된 정감을 동반하여 그만큼 더욱 애착이 가는 것들이기도 하다. 격식과 체면을 내려놓고 툭 터진 마음으로 입가에 술방울을 묻혀가며 먹어도 되는 술, 그런 술이 막걸리다.
  요즘처럼 장맛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면 전주 삼천동 우체국골목 막걸리 집을 찾아보자. 푸짐한 안주를 벗 삼아 막걸리 한잔에 파전 한입 베어 물면 꿀꿀한 맘을 달래줄 것이며, 잠시나마 고단한 삶의 짐을 풀어놓는 계기가 될 것이다.

 신 영 규/전북문협신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