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월드컵 본선을 준비하자

한국 축구가 2014 브라질월드컵 본선진출에 간신히 성공했다.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지만 대표팀이 최종 예선에서 보인 전력과 받아든 성적표는 전에 없이 초라하다. 최강희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지난 18일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이란과의 마지막 8차전에서 1-0으로 패했다. 그렇지만 한국은 승점 14점을 확보, 동점인 우즈베키스탄에 골 득실에서 1골 앞서 이란에 이은 조 2위로 본선에 진출하게 된 것이다.
이번 이란전을 비롯, 월드컵 예선경기 전반을 보면 한국팀의 조직력은 실종되고, 수비는 허술했다. 골 결정력이 부족하고 한국 축구의 특징인 근성과 투지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일부 전문가들은 “뻥 축구로 전락했다.”거나 “1970대로 후퇴했다.”고도 개탄한다. 오죽하면 레바논 대표팀의 테오 뷔커 감독은 한국 대표팀과 지난 5일 경기에서 무승부를 이룬 직후 “지적하기 민망하다.”면서 “한국팀은 공간 침투, 강한 압박, 끈질긴 볼 소유 등 현대 축구의 기본을 망각하고 있다.”는 고언(苦言)까지 했겠는가.
한국 축구가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려면 선수들을 ‘악동’으로 키워야 한다. 물론 이란이 한국을 실력으로 이긴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란은 정말 순수한 악동들이었다. 주심이 볼 수 없는 곳에서는 반칙으로 일관했다. 반칙을 배우자는 건 아니지만, 그런 선수를 만나면 철저하게 대비하고 악착같이 마크해야 한다. 착한 게임을 해서는 절대이길 수 없다.
당장 급한 과제는 새 대표팀 감독 선임이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히딩크의 기억이 아니더라도, 대표팀 감독의 리더십은 본선 성적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 축구협회는 대표팀을 브라질 월드컵 본선에 올려놓은 최강희 감독의 사임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곧바로 기술위원회를 열어 차기 감독 선임 작업에 들어갔다. 회의 결과 협회는 4명의 후보를 정했다. 그 중 한 명이 홍명보 감독이다. 그러나 홍명보 감독은 대표팀 감독직을 고사하고 있다. 그가 고사하는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월드컵까지 준비기간이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감독을 맡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축구란 무엇인가. 과연 축구가 무엇이기에 온 인류는 축구에 미치고 열광하는가. 특히 4년마다 치르는 월드컵 경기는 축구팬들을 열정과 환호, 한편으론 실망과 분노, 그리고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축구는 인류 화합의 장 평화의 축제, 사회 통합을 이루어 낸다. 지구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스포츠는 축구가 아닌가 생각한다.
넓은 운동장을 미친 듯이 질주하고 부딪치고 넘어지는, 검은 갈기 휘날리는 종마 같은 선수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전 세계인의 눈이 쏠려 어떤 나라에서는 잠을 설치고 어떤 나라에서는 잠시 정쟁을 중단하기도 하며, 또 어떤 나라에서는 내전까지 밀쳐둘 정도이니 월드컵의 위세는 가위 놀랍다.
축구는 손을 꽁꽁 묶어놓고 오직 발과 몸으로만 공을 다루게 하는 경기다. 특히 한판 대결을 앞둔 시점에서는 전쟁을 방불케 하는 긴장까지 감돈다. 그래서 문정희 시인은 ‘축구’라는 시에서 “언어가 아닌 것을/ 주고받으면서/ 이토록 치열할 수 있을까/ 침묵과 비명만이/ 극치의 힘이 되는/ 운동장에 가득히 쓴 눈부신 시 한 편/ 90분 동안/ 이 지상에는 오직 발이라는/ 이상한 동물들이 살고 있음을 보았다.”고 썼다. 하지만 운동장 바깥에서는 언어로도 치열하게 주고받는다. 상대국 선수나 감독의 말 한마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없던 허물까지 끄집어내어 서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해석해내기에 바쁘다. 인간이 아닌 공 하나에 이처럼 공격적인 속성들을 대신 쏟아부어 운동장 바깥에서는 그나마 평화를 담보할 수 있다면 축구, 아니 월드컵은 지구촌 주민들에게 지대한 공헌을 하는 셈이다.
내년 6월 13일 개막하는 브라질월드컵 본선까진 1년도 채 안 남았다. 대한축구협회는 그동안 예선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면밀히 분석해 국민의 사랑을 되찾는 대표팀을 만드는 데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 한다. 지금부터 착실히 준비하고 대비하면 ‘사상 첫 원정 8강’ 목표를 넘어설 수도 있을 것이다. 월드컵 본선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축구화 끈을 졸라매고 자신 있게 나아가자.

신 영 규/전북문협신문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