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비리방지법’만들어 유착고리 끊어야

6월 초순인데도 한낮의 기온은 30도를 웃돈다. 마치 삼복더위 같다. 그런데 이 무더위에 절전하라고 한다.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소 23곳 가운데 10곳이 동시에 가동을 중단한 탓이다. 이유는 품질 보증서를 위조한 짝퉁 부품이 공급된 사실이 드러난 때문이다. 충격적이게도 지난 10년간 국내 원전 5곳에 사용된 짝퉁부품이 7천682개에 이른다고 한다. 더욱이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난 것 또한 내부감찰에 의한 적발이 아니라 외부제보를 통해서란다. 원전의 잦은 고장이 이들 짝퉁부품과 한수원 내부의 비리와 무사안일주의에서 비롯됐다.
특히 원전 가동을 중단시킨 부품 시험성적서 조작에는 승인기관인 한국전력기술(한전기술)과 한수원 퇴직자들이 대거 연루된 것으로 밝혀진 데는 분노가 치민다. 관련 업체들은 ‘전문성 있는 인력을 채용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들이 정말 전문성을 발휘했다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비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협력업체들이 한수원과 한전기술의 퇴직자들을 영입해 일감 수주나 로비에 악용한 게 아닌지 의문이다. 또한 납품업체가 돈을 대고 민간 검증기관에 품질 시험을 맡기는 원전업계 관행 역시 납득하기 어렵다. 납품업체가 몰아주는 일거리에 목을 매는 검증기관이 어떻게 엄격한 시험을 하기를 기대하겠는가.
지금까지 우리나라 원자력 분야는 서울대 원자력공학과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출신들이 지배해 왔다고 한다. 이들은 배타적인 전문성을 앞세워 정부ㆍ한수원ㆍ한전기술은 물론 원전 제조업체와 시험기관 등에 포진해 폐쇄적인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이른바 원전 마피아들이 원전 건설에서 검사ㆍ감독에 이르기까지 시장을 독식하는 바람에 음성적인 비리 사슬이 만들어진 것이다. 소수의 이익 집단이 서로 유착하게 되면 부패와 비리의 온상으로 변질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들의 정보와 자료 독점을 막으려면 원전 마피아부터 해체시켜야 한다.
원전은 운영중요도가 높다보니 인증절차가 까다로운 부품들이 사용된다. 전문가가 아니면 검사가 어렵다. 그런 이유로 그동안 한수원이 직접 관리하지 않고 전문기관에 위탁해 왔다. 그러나 ‘그 나물에 그 밥’, 즉 학연, 지연 등 이리저리 얽힌 사람들이 검사하다보니 비리는 예견된 일이다.
원전은 국가 안보차원에서 다루어야 할 중대한 문제다. 단 한 번의 실수가 용납될 수 없는 고난도 기술이 요구된다. 이번 신고리 원전 2호기와 신월성 1호기에 문제의 부품은 원자로 제어 케이블이다. 원전 사고가 나면 방사선 누출을 막는 안전설비에 신호를 보내는 핵심 부품이다. 그런데 불량부품이 대거 사용됐다니 경악과 충격적이다.
그동안 자행돼온 원전 비리는 한국전력의 총체적 부실이다. 아니, 지금 드러난 건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다. 공사를 할 때나 유지 관리 때 자재를 납품하면 각종 시험 성적서를 제출하고 검수를 하는데 그 과정에 납품업체나 검수자, 그리고 시험의 모든 과정이 투명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는 없다. 이런 불량자재, 가짜 자재가 어디 원자력 발전소 뿐이겠는가. 화력발전소 수력발전소라고 없겠는가. 원전 중단으로 발생하는 손해는 모두 소비자(국민)의 몫으로 돌아올 건데 정말 한심한 일이다. 검찰은 비리에 가담한 관련자를 샅샅이 찾아내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한다.
정부는 원전 비리가 터진 후 ‘원전 비리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동시에 원자력발전소 부품 시험성적서 12만5000건을 전수조사하기로 했다. 원전 임직원의 유관업체 재취업 금지 대상을 확대하고 민간시험기관의 원전부품 검사 결과도 재검증하기로 했다. 민간시험기관 종사자는 공무원으로 간주, 수뢰죄를 적용해 엄벌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이지만 비리 대책이 공염불이 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수사하고 비리의 온상을 뿌리째 뽑아야한다. 무슨 일이 터지면 호떡집에 불난 듯 난리를 치다가 잠잠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으로 돌아가는 구태를 반복해선 안 된다. 이런 점에서 원전마피아 척결 및 ‘원전비리방지법’ 제정은 꼭 필요하다.

신영규/전북문협신문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