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은 씨앗이다. 생명을 담지한 씨앗이다. 생명을 담지한 씨앗은 언젠가 싹을 틔울 수 있다. 싹을 틔우기 위해서는 흙을 만나야 한다. 흙에 밀알을 떨어뜨리면 씨앗으로서의 생을 마감하며, 밀알은 왕성한 생명운동을 시작한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자신을 내어주고 베풀고 사랑하는 삶이니 이타적인 삶이다. 결국 이타적인 삶을 사는 것은 그리스도의 길을 걷는 것이다. 자신이 영원히 사는 길이 여기에 있다.

  잠시 성경 한 구절을 인용해보자. 창세기 3장 19절에 기록된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 말씀은 ‘이 세상 모든 생명은 흙에서 싹을 틔우듯 흙에서 난 것들을 먹고 살다가 다시 흙으로 돌아가 거름이 되어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게 한다.’는 생명의 원리를 담고 있다. 이 얼마나 오묘한 말씀인가. 흙에서 난 생명은 흙에서 난 것을 먹고 살다가 다시 흙으로 돌아가 흙의 거름이 되어 생명 됨을 다하고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것이다.

  사람은 흙에서 태어나 언젠간 다시 흙으로 돌아가게 된다. 대지는 모든 동식물들이 살아가는 터전이자 우리의 생명, 우리의 영원한 쉼터, 물과 공기를 떠받들고 있는 거대한 그릇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흙에서 얻는다.

  흙은 오곡백과를 생산하여 우리를 먹여주고, 섬유를 만들어 우리의 몸을 보호해주며 나무를 키워 우리의 삶의 자리를 마련해준다. 우리가 살아 숨 쉴 수 있는 것도 흙이 식물을 키워주기 때문이고, 뭇 동물이 쏟아내고 폐기하는 온갖 배설물과 쓰레기를 분해해 우리의 환경을 깨끗이 정화해주는 것도 흙이다. 그 뿐만 아니라 나무와 숲, 새와 곤충 등 이 세상의 모든 생물은 흙이 베풀어주는 은혜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바로 흙은 ‘생명의 어머니’이다. 지구 표면을 덮고 있는 불과 수십 센티미터의 흙에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믿기 어려운 위대한 힘이 숨어 있다.

  또한 흙은 주거생활에도 절대적인 요소였는데, 흙이야말로 기후 풍토에 가장 알맞은 건축 재료였다. 원시시절로 올라가면 갈수록 흙에 대한 의존도가 더 높다. 화학섬유가 발달하지 않았던 때 인간이 최초로 사용했던 옷은 흙에서 자라난 나뭇잎이나 식물의 줄기였다. 아담이 가장 손쉽게 구해 입었던 옷이 무화과 잎이었다. 그러므로 흙을 잊고 사는 것은 공기와 물을 잊고 사는 것과 같다. 흙이 없으면 단 하루도 생명을 유지 못하며, 흙을 기반으로 지구상의 동식물이 살아간다.

  참으로 흙 속엔 무수히 많은 생명이 살아 움직인다.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지렁이에서부터 미소동물(톡톡이, 응애)까지 또 눈에 보이지 않는 수없이 많은 미생물(곰팡이, 세균, 바이러스)까지 모두 살아있는 생명체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생명을 잉태하고 창조해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흙은 위대하다. 흙은 이 세상 만물의 생명과 에너지를 생성하고 환경을 보전하는 정화능력을 갖고 있다. 흙은 생명의 모태일 뿐 아니라 풍수해를 막고, 산소를 생산하며, 유해 가스를 흡수하여 공기를 맑게 한다. 기온과 습도를 조절하고, 토지의 사막화를 방지한다. 흙은 이 세상 모든 물질을 품어 썩게 하고, 그 힘으로 새로운 생명을 창조한다. ‘신토불이(身土不二)’나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처럼 사람의 몸도 흙과 하나인 것이다.
   이렇듯 흙은 어머니의 사랑과 같다. 사람들이 쏟아놓은 더러운 쓰레기를 받아들여 정화해 줌으로써 생명계에 기여하고 있다. 흙은 인간과 자연 생태계의 균형을 잡아 주는 주춧돌이고 생명과 환경의 중핵(中核)이다. 우리는 생명의 어머니인 흙 앞에 오만을 버리고 겸허하게 설 때 비로소 근원적인 죄악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신 영 규/전북수필 주간 겸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