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하버드 대학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강의는 마이클 샌들 교수의 정치철학강의라고 한다. 다. 하버드대생 7천명이 안 되는 학부생 중에서 철학 강의를 듣는 수강생이 800명에 이른다. 이 강의의 주제는 정의로운 세계를 만드는 관점과 방법이다. 플라톤, 로크, 밀, 칸트 등의 고전을 읽고 그들의 철학이 지금 현실 세계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강의하고 토론한다. 강의실에서 미진했던 토론은 기숙사에서 밤늦게까지 연장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미국에서 철학 전공이 인기라는 외신 보도는 한국의 대학들에 신선한 충격이다. 철학의 인기는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영국에서는 신입사원 선발에서 철학 전공자들이 우대받는다는 보도가 있다. 기업들이 현재 원하는 것은 단편적 지식이나 기술이 아니라 세계를 선입견 없이 파악해서 열린 시각으로 접근하는 인재라는 것이다. ‘실용’을 강조하는 미국에서, 그것도 미국을 이끌어갈 인재의 산실이라고 자처하는 하버드대학에서 왜, 철학에 관심을 갖는 것일까?

철학(philosophy)의 어원은 ‘사랑하다, 좋아하다.’라는 말과 ‘지혜’라는 말을 합친 것이다. 즉, ‘지혜를 사랑하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또, 철학이란 단어의 한자(漢字)를 직역하면 밝은 학문이다. 그럼 밝은 학문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 삶과 우주의 근본 원리에 대한 끝없는 질문과 탐구이다. 그래서 철학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게 되면 그 매력에 깊이 빠져들어 헤어나기 어렵다.

나는 철학이라는 학문을 좋아한다. 성격 탓인지 모르겠다. 외람되지만 나는 또 스스로 한국의 쇼펜하우어를 자처하는 사람이다. 쇼펜하우어와 나완 다소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고 내가 쇼펜하우어처럼 심각한 염체주의자는 아니다. 쇼펜하우어는 노년에 낙천주의자로 돌아왔지만, 그는 “인간 삶은 까닭 없이 돌아가는 시계추와 같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백번 옳은 말이다. 시계 바늘을 돌리기 위해 감아놓은 태엽이 다 풀어지는 날 인간 시계는 영원히 깨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삶을 등져서는 안 된다. 오히려 역으로 살아가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어리석고 유치한 삶의 궤적들이 있게 마련이다. 역사상 위대한 업적을 남긴 철학자들은 어땠을까? 또 그들은 어떻게 철학자가 되었을까?

자식에 대한 사랑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최초의 철학자 탈레스, 아내도 도망쳐버릴 만큼 까다로운 성격의 세계 4대 성인 공자, 자신이 ‘정당하게 사형당하기를 바라냐’ 며 아테네의 양심이라고 외치고 독배를 마신 소크라테스, 노예로 팔려갔다가 지불된 자신의 몸값으로 아카데메이아를 세운 플라톤, 못생긴 외모를 감추기 위해 치장에 힘쓰고 아테네 사람들의 심판을 피해 도망친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이 만든 법에 의해 사형을 당한 상앙, 모방성이 뛰어나 ‘맹모삼천지교’라는 교훈을 만들게 한 맹자, 진시황제가 전쟁도 마다하지 않으며 빼앗아온 인재 한비자, 점괘가 흉괘가 나와 황제에 대한 상소를 거두어들인 주자, 세종대왕이 감탄한 신동 김시습, 뒷간에 앉아 윗니와 아랫니를 부딪치는 일을 건강법으로 채택한 퇴계 이황, 결혼할 때 미모보다는 지참금이 더 중요하다고 외친 칸트, 정신착란증세로 고생하다가 생을 마감한 니체, 계약결혼의 시조인 사르트르, 삶은 끝없는 욕구와 고통이라고 말하는 쇼펜하우어, 삶과 죽음은 하나의 기(氣)가 모였다, 흩어졌다를 반복하는 것이라고 말한 도학자이자 철학자인 화담 서경덕, 나이 60세 이후부터 죽을 때까지 죽음과 친숙하기 위해 관속에서 잠을 잤던 20세기 한국 사상계의 거목 다석 유영모, 또 유영모 선생의 제자 함석헌 등등…….

이처럼 위대한 철학자들의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 그들의 진솔한 삶을 통해 위대한 사상을 만나다보면 어렵고 딱딱하던 철학이 쉽고 재미있게 느껴질 것이다. 세상을 바꾼 위대한 철학자들은 죽고 없지만, 그들의 삶과 철학은 오늘날까지 살아 숨 쉬고 있다.

따라서 철학은 지식이 아닌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다. 지식은 아는 것이다. 잘 알고 있는 것인지 잘못 알고 있는 것인지 지식은 증명이 가능하다. 이에 반해 지혜는 지식을 분별할 줄 아는 능력이다. 국어사전에서는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사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식을 제대로 얻으려면 지혜가 우선 필요하다. 철학은 바로 이러한 지혜를 갖게 해주는 역할을 해준다. 이런 면을 고려할 때 우리 중고등학교에서도 철학을 정규수업 과목으로 채택하여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신영규/한국신문학 전북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