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용돌이치는 한국 정치는 다양한 배신의 군상(群像)을 낳았다. 5년 대통령제의 정권 출범 교체기 때마다 우리의 정치문화는 일그러졌다. 배신과 변심, 보복과 권모술수, 줄타기와 철새로 얼룩졌다. 그런 장면에 등장하는 인물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권력의 변방에서 갑자기 핵심에 들어간다. 그런 뒤 핵심에서 멀어지면 어느 날 반대쪽으로 가 있다. 권력에서 밀려난 게 억울하다는 느낌이 강할수록 배신의 칼날은 날카롭다.

  최근 대선정국을 틈타 DJ(김대중 전 대통령) 동교동계의 분열에 이어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도 분화하고 있다. 동교동계 중진이었던 한광옥, 김경재, 한화갑 씨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지지를 선언해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여기에 김덕룡, 강삼재 등 상도동계 핵심 인사들도 마치 동교동계 보란 듯이 민주당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여당에서 야당’쪽으로 이동했다. 상도동계와(YS) 동교동계(DJ)의 엇갈린 운명이다. 이를 두고 항간에서는 ‘배신자’, ‘변절자’란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돈다.

  변절(變節)의 사전적 의미는 ‘절개나 지조를 지키지 않고 바꿈’이다. 배신 배반과 비슷하지만, 뉘앙스는 다르다. 그동안 가졌던 생각을 바꾸는 게 변절이라면, 배신 배반은 사람에 대한 믿음이나 의리를 저버리는 것이다. 변절의 반대편에 지조(志操)가 있다. 원칙과 신념을 굽히지 아니하고 끝까지 지켜 나가는 꿋꿋한 의지, 또는 그런 기개를 ‘지조’라고 한다.

  예부터 ‘인심은 조석변’이라고 했다. 사람의 마음은 언제든 변할 수 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 살아 숨 쉬는 모든 것은 변해야 살 수 있는 것이다. 대자연도 변하고 우주 모든 만물은 변한다. 이렇듯 모두 변하는데 간사한 사람의 마음이야 어찌 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정치인의 마음은 쉽게 변해선 아니 된다. 지조와 절개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정치가 썩고 배신과 권모술수가 판을 친다고 해도 최소한의 의리는 지켜야 한다. 살기 위해 권력도 좋고 출세도 좋다지면 출세에 앞서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정치적 양심은 지켜야 하지 않는가?

  평생 동교동계를 지키며 故 김대중 대통령을 보좌했던 한광옥ㆍ한화갑 씨를 두고 많은 말들이 오간다. 특히 한화갑 씨는 유신정권 시절 감옥을 몇 차례 들락거렸고, 고초를 많이 겪은 사람이다. 그런 그가 하루아침에 변절을 하다니…. 이들 두고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딱 어울린다.

  정치인들의 추태는 그렇다 치자. 그런데 시인 김지하 씨의 변절은 연민의 정을 갖게 한다. 그것은 그의 변절이 충격적이라기 보단 그의 특유의 입담으로 거친 말들을 쏟아내면서 화제의 인물이 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의 ‘오적’이란 시는 당시 정부 각료, 국회의원, 재벌 등에게 비수를 들이댄 짜릿함이 배어있다. 그는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 수감되었고, 사형선고, 감형을 거쳐 7년 동안 독방에서 지냈다. 출감 후 유신정권에 의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정신병원에 수차례 입원한 경력이 있다.

  이처럼 저항시인으로서 그가 했던 민주화 투쟁은 높이 사야 한다. 7-80년대 많은 국민들은 그의 시를 읽고 눈물을 흘렸고, 분노 했고, 투쟁의 현장에 나섰다. 필자 역시 그를 매우 존경하였다.
   그러나 이제 그는 7-80년대의 김지하가 아니었다. 최근 조선일보에 쓴 ‘한류-르네상스 가로막는 쑥부쟁이’라는 제하의 칼럼은 어제의 동료에게 칼을 들이미는 행위였다. 그의 치열했던 과거를 짓밟는 행위였다. 자가당착이다.

  변절자들의 공통점은 저마다 그럴듯한 구실을 붙이며 자기를 합리화시킨다. 그러나 국민들은 그들이 왜 그랬는지 다 안다. 민주화 운동을 하며 함께 고초들 겪었던 그들의 동지들은 서로를 비난하고 헐뜯지만 이미 얼굴에 분칠을 하고 나선 그들을 붙잡지는 못한다. 차돌이 바람이 들면 백리를 날아간다는 말이 있다. 한번 권력의 맛을 본 사람들에게 정조(貞操)는 그리 중요한 가치가 아니다. 대선을 하루 앞두고 배신과 변절의 정치를 보는 뒷맛이 씁쓸하다.


신영규/한국신문학 전북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