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정녕 서정 시인가

여인들의 하늘거리는 옷자락 에서도 쉽게 봄이 온 것을 느낄 수 있지만 봄은 우리 인간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는 생동의 계절이다.
아직은 꽃샘 바람이 차갑다. 그러나 개나리 꽃이 곧필듯이 머물고 목련(木蓮) 꽃도 솜털의 윤이 나고 있으니 정녕 봄은 온 것 같다. 만약 겨울이 지나도 봄이 오지 않는다면 우리 인간 생활이 얼마나 절박 할까? 흔히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고 봄은 여자의 계절이라고 말하지만 다른 계절이 서사시 (敍事詩)라면 봄은 정녕 서정시 (抒情詩)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느새 소생의 기쁨이 넘쳐나는 3월이다.
계절의 도래를 알리는 꽃의 전령이 매서운 칼바람을 온몸으로 견디며 싹을 피운다.
여린 새싹이 얼음을 녹이며 꽃을 피우는 모습을 볼 때마다 놀라운 생명력에 절로 탄성이 나온다. 이름 모를 풀꽃이든 그 무엇이든 생명의 탄생은 숭엄하다.
숨 막히게 경이로운 기적의 순간. 마음은 더없이 겸손해진다. 3월은 작은 꽃이 보여 주는 기적 앞에서 일상의 오만함을 반성하는 시간이다.
연약한 풀꽃이 동토에서 피어나는 비결은 무엇일까? 사나운 곡괭이질에도 틈새를 내주지 않는 눈밭에 복수초와 앉은 부채꽃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오롯이 피어있다.
꽃이 더운 입김이라도 내뿜는 것일까? 꽃주위에 눈이 둥글게 녹아있다. 이유를 알기위해 앉은 부채 꽃 안으로 온도계를 넣어 보니 온도가 서서히 올라갔다. 외부 온도는 영하 1.2℃ 인데 꽃 내부 온도는 무려 영상 11℃ 에 이른다. 꽃은 자기 체온으로 조금씩 얼음을 녹이며 싹을 티운다.
극한 상황에서도 생명을 이어 가려는 꽃의 투쟁은 신비로움 그 자체다. 이렇듯 이른 봄에 피는 꽃은 봄비와 함께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그러나 그 속엔 범접할 수 없는 우아함과. 세상의 미련 따위는 홀연히 떨친 듯한 정결함이 배어 있다.
어디서 이리도 티 없는 바람이 불어 오는 걸까. 남녁의 향취를 데불고 오는 이 보드라운 바람결. 햇살 또한 이를데 없이 해 맑다. 분명 축복의 봄이다.
흔히 일지춘심 (一枝春心)과 백년춘색(百年春色)을 음미하는 망중한의 시간을 즐긴다면 얼마나 멋이있는 일이겠는가.
봄은 사랑의 계절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만 봄을 느끼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봄이 와도 봄을 느끼지 못한다면 리듬 없는 삭막한 인생이라고 느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날만새면 천정부지로 뛰고있는 고물가 시대에 살고 있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소 시민들이야 정부의 말뿐인 물가정책에 고달픔에 못이겨 유유자적 (悠悠自適)한 마음으로 계절의 감각을 느낄 수가 없음을 어찌 하랴?
겨울의 눈보라와 얼어 붙음의 후미에서가 아니고는 봄을 맞이할 수 가 없는 것처럼. 벗미어진 구름속에서 내비치는 햇빛이 더욱 빛나 보이듯. 고통을 통과 하여 피어나는 자유의 꽃이야말로 진정 고귀할 새봄을 맑게 할 강한 힘이 되어줄 봄맞이를 주저하고 싶지 않다.
화려한 색과 향기를 뽐내는 꽃은 모두 아름답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진정 봄꽃이 아름다운 건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전령이라는 특별한 직책 때문이다.
추위를 견뎌 낸 강인함과 두려움없이 눈밭에서 꽃을 피우는 투지. 그러면서도 기품이있다.
그래서 끝없이 순환하는 생명속에서 봄꽃의 개화가 우리에게 더 큰 감동을 주는지 모른다.
온 열정을 다해 꽃을 피워 내는 봄꽃의 의지를 보면서. 우리 또한 저들과 같은 생명이라는 감격에 젖는 3월이면 얼마나 좋을까......

허성배/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