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까지의 ‘기억’은 거의 없다. ‘기억’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느 학교, 마을 친구, 선후배, 농사일이 전부다. 어떻게 학교에 다녔는지? 학습은 어땠는지?에 대한 기억이 하얗다. 운동회도, 등하교했던 기억도, 학교 건물 배치도, 이상하리만큼 기억이 없다. 단지, 학교에 대한 기억보다는 손과 몸에 흙이 마르지 않을 정도로 마을에서 자연과 더불어 이리저리 천방지축으로 나댔던 기억이 우선이다.

그런데도 내가 나를 들여다보면, 참 이해가 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어린 시절처럼 그저 그렇게 생활한 기억에 비추어 보면, 삶도 설렁설렁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그때와는 매우 다르다. 미리 준비하고, 현장에서는 준비되지 않은 일을 처리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차근차근 하나하나 돌아다보면, 또 생생한 기억이 남아 있다. 참으로 이런 나의 자아가 아이러니하다.

‘준비’(準備)는 ‘어떤 일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한 마음가짐이나 주변 조건 등을 미리 채비’한다는 의미의 명사다. 중학교 시절부터 시험에 ‘벼락치기’란 접근할 수 없는 프로젝트였다. 평상시 예습과 복습을 통한 노트와 책을 정리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다 보니 재수 없게도 시험 전날까지 드라마나 스포츠를 즐기는 것이 나였다. 그리고 시험 당일 아이들은 준비에 열중일 때, 나는 어제 본 드라마나 스포츠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아이들은 이런 나를 바보처럼 여기고 가까이하지 않는 것은 당근이다.

그런 나는 지금도 내일 일을 미리미리 생각하고 준비하는 일상적인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나의 성격이 가져다주는 장단점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쉽게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반세기를 넘게 살아오다 보니 이제는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습관처럼 하던 일이라 조금만 길이 어긋나면 몸이 미리 알고 원래대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저마다 다 타고난 재능이 있다. 그 재능을 키워가는 길이 바로 준비의 길이다. 설령 포기하고 싶고, 벗어나고 싶은 길이라도 한 발짝 물러나는 시간을 통해 고민하고 돌아다보면 길이 보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준비’다. ‘준비’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준비’가 부족하면 후회와 가는 길에 어려움이 동반한다. 두말할 필요가 없다.  

달리기나 수영과 같은 기초 종목에서도 ‘준비’가 잘 된 선수는 좋은 기록을 낼 수 있다. 우리의 인생은 무엇이 정답인지를 알고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일단 가보는 것이다. 막연하게 주어진 길이니 그냥 주어진 대로 가보는 것은 너무 밍밍하지 않은가? 도전 정신을 가지고 나름의 계획을 세워 힘차게 달려가야 하지 않을까? 

어떤 것도 정답이 될 수 없다. 주어진 상황에 맞게 잘 준비하는 오늘 하루가 되자. 다만 후회가 최소화할 수 있는 그런 준비를 하도록 노력해 보자. 나를 위해서도, 상대방을 위해서도, 단체를 위해서도, 국가를 위해서도, 지구를 위해서도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손잡고 계단을 우리 함께 걸어 올라가 보자.

박여범 / 용북중학교·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