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 이어>얼마를 더 가서 유턴했는지 모르게 나는 익숙한 길에 접어들고 있다. 차량제어 막대기가 올라가고 내비게이션은 곧 목적지에 도착함을 알린다. 우회전하니 지하 주차장 입구가 보이고, 꼬리를 물고 들어가는 차량 속에 나도 있다. 일곱 시도 안 되었다. 그런데 벌써 만원인 차들의 휴게소엔 끼이익 끼익 소리만 요란하다. 어찌어찌 핸들을 돌려 주차하고 시동을 끈다.

마스크를 찾아 입과 코를 가리고 문을 열어 내리려고 주차장 바닥을 바라본다. 덩그러니 자리 잡은 발등이 희멀거니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평생 처음 해 본 깁스가 이렇게 거친 구속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늘 계단을 이용하던 출퇴근은 기억의 끄트머리에 있다. 절뚝절뚝 익숙지 않은 발걸음으로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오층을 누르고 문이 닫히길 기다린다. “잠깐만요” 소리에 다시 문을 열어준다.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 우연히 인사를 나누게 된 00층 아저씨다. 불고 족족 막걸리 한잔 걸치셨나 보다. 코로나19로 혼술 위해 맥주 세 병에 소주 한 병, 24시 마트 찍고, 집에 오는 중이다. 짧은 대화만이 덜렁 둘만의 공간을 채운다. 

“왜 다치셨어요?, “아프지 않으세요?, “고생 많으시겠습니다” 등등, 지극히 표면적인 형식적 인사도 나눌 줄 모르는 이웃사촌이다. 이름도 직업도 모른다. 단지, 00층에 살고 있으며, 가끔 담배 연기를 내가 사는 00층으로 선물해주는 아저씨라는 점이다. 나는 별 신경 쓰지 않고, 비밀번호를 띠디딕 띠디딕 누르고 “다녀왔어”를 외친다. “어서 와 수고 많았네.” 반가운 짝지의 목소리가 개념 없는 이웃사촌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공부방 책상에 가방을 내려놓고 나오니 짝지가 두꺼운 책자를 보고 있다. 지나가며 보니 ‘보험증서’다. 얼마 전 자동차 보험을 갱신하며 함께 가입한 운전자 보험증서다. 

“이 보험에 아파트 누수나 화재 보험도 포함된다고 했지? 근디, 보장된다는 내용이 안 보여? 당신 기억이 나? 얼마까지 보장되는지?“

”......“

”왜, 기억이 없어?“

”응, 안내는 받은 것이 기억이 나는디? 다시 알아봐야 할 것 같은디?“

”그럼 내일 전화해서 다시 물어봐 줘? 응”

“그럼, 보장 금액이 중요하지, 중요하구 말구. 잠깐 잊고 있었네.”

“......”

“오늘 하루는 어땠어? 무슨 일 있는 것은 아니지?”

“......”  <끝>

박여범 / 용북중학교·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