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에 이어>어느 날 아버지는 빨간 씨앗 한 말을 들고

마루를 오르며 큰소리로 삼형제를 안방으로 불러 모아

얼굴 가득 그렇게 웃음이 가득한 모습은 처음이라 얼떨떨할 때

고개를 숙이고 열매를 바라보다가 달달한 목소리에 귀가 놀라고

삼년이면 집안을 일으켜 세운다는 정체는 죽은 사람도 살려낸다던 

한 번도 눈으로 확인한 적이 없는 알알이 튼실한 건강 지킴이는

한 주먹 아버지 손바닥을 누비며 높은 천장 위로 희망을 잉태하고  

아무리 바라보고 바라보아도 믿음이 가지 않는 만병통치약이라니

파란 잎사귀와 드문드문 보이는 튼실한 삼 뿌리를 확인하며 거닐던

고랑에는 서늘한 옷자락이 마를 줄 모르던 당신의 웃음만이 가득하고 

철없이 지저귀던 까치는 오늘도 개구리 잡으러 다시 왔건만

멧돼지가 놀다간 멧동 위 어지럽게 피어난 토끼풀을 만지작거리며

튼실한 뿌리에 주렁주렁 다리를 꼰 인삼마차가 수직으로 하늘을 향해

일곱 색깔 무지개로 피어나고, 흐르는 구름사이로 다섯 식구 웃음소리에

멍석 깔고 걸친 청산 막걸리는 봉분(封墳) 위 어지럽게 피어난 그리움만 가득하다

           박여범   -「어지럽게 피어난 그리움만 가득하다」 전문-

새벽부터 캄캄한 밤까지 인삼밭과 농사에 여념이 없으시던 부모님을 생각하며, 오늘도 나는 냉장고를 열어 꿀과 수삼이 쟁여 있는 병을 열어 한 숟가락을 입에 넣고 음미한다. 어릴 적 어머니 아버지의 바로 그 맛이다. 고향의 맛, 인삼의 맛, 그리고 그리움의 맛이다. 

나는 촌놈이다. 귀하디귀했던 인삼이 이제는 많은 지역에서 재배되고 있다. 그래도 나에게는 추억의 고향 옥천 인삼이다. 우리 지역 진안에서도 많이 재배되고 있는 인삼의 진화를 기대한다. 우리가 느꼈던 어린 시절 인삼의 맛이 4차원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후손에게도 한국적인 맛과 건강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가난이 부끄럽지 않았던 어린 시절, 인삼으로 가족을 생계뿐만 아니라 건강까지 지켜주시고 하늘나라로 가신 아버지, 노동을 함께하며 성장한 형제자매, 치매로 자식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하지만, 아버지가 남겨 주신 그 꿈은 ‘튼실한 뿌리에 주렁주렁 다리를 꼰 인삼마차가 수직으로 하늘을 향해, 일곱 색깔 무지개로 피어’났다. 그리고 ‘흐르는 구름사이로 웃음소리에 멍석 깔고 걸친 청산 막걸리는 봉분(封墳) 위 어지럽게 피어난 그리움만’ 가득하다.

박여범 / 용북중학교·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