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가 지났다. 장맛비에 습도가 높은 무더위가 기승이다. 밤에는 열대야로 모두 힘든 시간을 짊어지고 있다. 서울에 일이 있어 연가를 냈다. 일정에 하나를 추가했다. 40년 동안 만나지 못한 중학교 동창 이도수를 만나는 것이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얼굴 보고, 밥 먹고, 차 마시고, 내려온다는 계획이다. 미리, 전화하고 약속을 잡았다. 

계획된 일정은 생각보다 일찍 마무리되었다. 지하철 출입구에서 친구를 기다렸다. 81년 중학교 졸업과 함께 헤어진 친구다. 못해도 40년이란 세월이 흘러가 버렸다. 세월이 뭐 그리 중요한가? 혜화역 3번 출구에서 그렇게 친구를 만났다. 서로를 알아보는 것은 ‘누워서 떡 먹기’보다 쉬웠다. 서로의 눈빛으로, 어릴 적 추억으로, 생생한 기억으로, 서로 손을 마주 잡고, 어깨를 두드려주며, 그렇게 40년을 온전히 담아냈다. 

친구는 여전했다. 곱게 나이가 든 모양새에서 그늘을 찾기가 어려웠다. 나름, 고생했겠지만 얼굴을 밝고 건강했다. 중학교 졸업 시절 나의 키는 148 정도였다. 부모님은 키가 크지 않을까? 한숨으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반면, 친구는 키가 제법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친구와 나는 세월의 흐름 속에 같은 눈높이로 서로를 바라다보고 있었다.

“오늘 밥은 무조건 내가 산다. 그리고 커피도 내가 산다. 걱정하지 말고 우리 배불리 먹어 보자.”

“그래, 밥이야 누가 사든, 커피야 누가 사든 그것이 뭐 그리 중요하냐? 울 사이에, 자식 여전하네.”

“자식…….”

대학로로 이동을 했다.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밥부터 먹자는데 의견이 일치했다. 시간을 보니 12시가 코앞이다. 자가용을 두고 안성에서 버스로 1시간여를 달려온 친구다. 무조건 맛있는 음식을 먹기로 했다. 역시, 서울은 서울이다. 어디를 바라보아도 사람들로 붐빈다. 종종걸음으로 무엇인가 바쁘게 움직인다. 그 가운데 친구와 내가 서 있다. <중편에 계속>

박여범 / 용북중학교·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