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쳐 가는 바람이 검게 그은 얼굴을 스친다. ‘더위’를 손님으로 동반하는 바람이다. 그렇더라도 상쾌하게 다가오는 아침이다. 온종일 이 기분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기대치이며 ‘그랬으면 좋겠다’라는 소망으로 남는 경우가 많다.

“박 박사 오늘 장난 아닌데…….”

“......”

“그렇지 장난 아니야 오늘 조심조심 아침부터 아 짜증 지대로다…….”

:......“

“그래도 울 박 박사 개착해, 개착하다니까 그러니까 이 정도지…….”

“......”

입 안 가득 진한 아메리카노 향에 취하려는 순간이었다. “다가나 님으로 부터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이어서 “바라나 님으로부터 메시지가…….” 모니터 중앙을 차지한 메시지에 묘한 감정이 실리며, 앞과 옆의 동료를 바라다보았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무엇인가를 열심히 타이핑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양새다. 

나름 건조한 직장의 무료함과 선배로서의 작은 임무를 수행하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결국 돌아온 것은 초대하지 않은 화려한 메시지였다. 늘 얼굴을 마주 보고 웃으며 인사를 나누었던 수많은 추억(?)이 메시지와 겹치는 그림이 그려진다.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밀려오는 배신감에 허전함이 밀려온다. 기가 막힌 현실이다. 어쩔 것인가?

스쳐 가는 소슬바람에 인연의 끈을 부여잡고 꿈틀꿈틀 맴돌며 내달리는  

복잡미묘 모호함에 흔들리는 동공이 부담스러워 마주하지 못하고

오늘도 서성이는 평온의 시계추가 일도 없는 영혼과 흔들리며 동행해도

세월아 네월아 춘향아 월매야 너도 가고 나도 가는 세월에 어쩔 라냐

다다닥 찌지직 밑줄 긋기 눈물 콧물 거래내역 줄줄이 아롱아롱 새겨지고

스멀스멀 차오르며 꼬물꼬물 자라나는 마이너스 통장에는 연민만이 쌓여가고 

세상 좋은 이것 저것 다 합해도 살아 있음에 살아내야 함에 둥글둥글 감사함으로

이보다 더 예쁠 수 없는 앵두의 붉은 속삭임에 문을 열어제끼는 하루가 나른해진다

         -박여범 (‘열어제끼는 하루가 나른해진다’) 전문-  <하편에 계속>

박여범 / 용북중학교·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