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건산천 이야기

모래내 시장 아래쪽에는 ‘흙다리’가 있었다. 두 개의 나무를 걸쳐 놓고 흙을 쌓아 겨우 한 사람이 건널 수 있는 다리였다. 강원도 영월 동강에나 있어야 할 흙다리가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도시의 시장근처에 있었던 것이다. 벌써 20여년 전의 일이다. 처마가 낮고 마당도 없는 서향으로 햇빛도 안 들어오는 흙집에서 날이면 날마다 뒹굴던 때였다. 한 달에 한두 번 저녁 무렵 대문 밖으로 나와 이 다리까지 왔으며 이 다리는 번화가로 가는 통로였다. 하지만 도저히 건너지 못하고 대포집 앞에서 장기를 두는 어르신들의 어깨 너머를 기웃거리다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 다리를 건너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던지. 몇 년 후에 새롭게 다리를 놓았지만 더욱 낯설었다.
거기서 10여년을 살고 옛 한진고속 터미널을 지나 이 물길을 따라 아래쪽에 지은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주변 사람들은 물이 썩어서 냄새가 나고 모기가 들끓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랬는지 어느 때부터 복개를 시작했으며 흙다리가 있는 곳도 사라지고 한진고속도 옮겨갔으며 포장을 하기 시작하더니 딱 아파트 뒤까지만 하고 말았다. 누군 예산이 부족해서 나머지는 예산이 확보되는 대로 한다나 어쩐다나, 그렇게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복개한 곳의 끝은 옛 농산물공판장으로 ‘약강다리’라 불린다. 그 주변에는 아직도 몇몇 상인들이 채소가지를 내놓고 팔고 있다. 그곳에서 5년여 전에는 두 노인네가 석양에 막걸리를 거나하게 마시고 장마철에 물이 흐르는 것을 보며 내기를 했다. 한 노인은 건널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노인은 건너면 막걸리 한 병을 사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노인은 건너려고 물속으로 들어갔고 그대로 불어난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히도 그 다음날 시체는 백제교에서 찾았다고 하지만 그날 뉴스에는 “호박 따려 들어갔다”고 나왔다.
천변을 따라 핀 호박꽃이며 유채꽃이며 온갖 풀들이 무성하여 봄부터 쑥을 캐는 사람부터 호박을 따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하는 수 없이 그 천변을 따라 터미널 앞쪽에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빈둥거리며 전주천과 만나는 자원봉사센터까지 오고가는 것이 일과인 사람에게 천변은 한없는 문화공간이다. 목련이며, 벚꽃이며 하늘을 찌를 듯한 개잎갈나무며 계절마다 풍경이며 아름다움이다. 그런데 두 번을 봤으니 3년 전에는 비가 조금만 안 와도 마르는 바닥 중에 물이 고인 곳에서 새끼를 낳아 기르는 천둥오리들을 봤다. 처음에는 여섯 마리를 봤고 작년 봄에는 일곱 마리의 병아리 같이 작은 것들이 어미인 듯한 큰 천둥오리를 따라 다녔다. 그것이 너무나 좋아 소로우의 월든 호수를 생각하며 쉬는 시간마다 그것들을 보며 물길을 재어보았다.
그런데 작년 가을부터 생태하천 복원공사를 한다고 덤프트럭과 포클레인이 양 옆의 모든 흙을 걷어내고 돌을 쌓으며 바닥을 고속도로만큼이나 단단하게 오가고 있다. 항상 그 자리에 있어야 할, 한가하게 헤엄치며 뭔가를 끊임없이 바닥에서 주워 먹어야 할 천둥오리들은 공사가 멈춘 지난 겨울 내내 보이지 않았다. 잠시 이른 봄에 두 마리가 보이긴 했지만 하루뿐이었다. 그리고 공사가 다시 시작되면서 몇 개월이 지났는데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이번 봄에 새끼들은 낳았을까. 가뭄에 돌멩이들만 앙상한 바닥을 보면 그 예쁘고 예쁜 새끼들의 모습이 눈에 어린다.

유봉관(번역가, 시인)